‘동유럽 원전시장 관문’된 체코 시골마을… 한·미·프랑스 각축

[리셋! 에너지 안보] <14> 원전 수주전 치열한 체코

체코 두코바니 원전의 냉각탑에서 지난달 20일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두코바니 원전에는 4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차로 2시간 남짓 거리에 위치한 트레비치 시(市) 두코바니는 인구소멸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작은 동네다. 지난 1월 기준 883명이 거주하고 있다. 여느 유럽 시골 마을과 마찬가지로 한적한 지역이지만 최근에는 세계 주요 원자력 발전 운용사들이 눈독을 들이는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체코 정부가 추진하는 신규 원전(두코바니 5호기) 건설 지역으로 낙점되면서다.

체코는 두코바니 4기·테멜린 2기 등 총 6기의 원전을 가동 중이다. 지난달 20일 두코바니 원전을 찾았다. 녹색으로 우거진 들판 한가운데 세워져 있는 8개의 초대형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났다. 높이 125m인 각 구조물 꼭대기에서는 새하얀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원자로를 식히기 위해 사용하는 냉각수가 수증기로 변하면서 바깥으로 방출되고 있었다. 두코바니 원전은 체코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20%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바로 옆에 위치한 두코바니 5호기 건설 부지는 아직 시골 풍경을 간직하고 있었다. 빈 부지에서는 지역주민들이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포도밭인 이곳을 중심으로 8조8000억원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가 진행될 예정이다. 체코 정부는 지난 3월 두코바니 원전 부지에 1200㎿급 신규 원전 1기를 건설하는 내용의 사업을 발주했다. 2029년 공사를 시작해 2036년 가동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체코 정부가 원전을 추가로 짓기로 한 데는 두코바니 1~4호기 원전 수명과 에너지 자립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1985년 상업 가동을 시작한 두코바니 원전은 2045~2047년이면 수명을 다한다. 그 전에 새로운 원전을 지어 이를 대체해야 한다.

지역 주민들의 호응도가 높은 점도 사업 추진에 긍정적인 요소다. 두코바니 원전을 관리하는 체코전력공사(CEZ)는 원전에 대한 주민들의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1998년부터 두코바니 원전을 주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주민 7명으로 구성된 주민위원회는 언제든 발전소를 방문해 원전 운영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데 2~3개월에 한 번씩 원전을 찾는다고 한다. 이리 베즈덱(Jiri Bezdek) CEZ 언론 담당은 “주민위원회는 1년에 4번 정기회의를 갖는다. 정기회의가 아니어도 언제든 원전에 방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규 원전 건설을 앞둔 체코 현지는 고조된 분위기가 감지됐다. 두코바니 원전이 들어서면서 인근 주민 2000명은 관련 산업에 종사하게 됐다. 지역 주민들은 신규 원전 건설로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두코바니 5호기 건설 후 유지·보수 과정 역시 추가 고용 효과를 낼 것으로 평가된다. 비체슬라브 요나쉬(Vitezslav Jonas) 두코바니 지역협의회 의장은 “5000~6000개 일자리가 새롭게 만들어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체코 산업계도 두코바니 5호기 건설에 거는 기대가 크다. 체코 정부가 두코바니 신규 건설 1기를 포함해 모두 4기를 건설하려 한다는 계획을 공표하며 들뜬 분위기가 조성됐다. 건설 과정에서 자연스레 최신 원전 기술을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나쉬 의장은 “체코 산업을 지지하기 위해 체코 업체들과 협력할 수 있는 곳으로 선정됐으면 좋겠다. 현지화가 무엇보다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40% 수준인 화력 발전 비중과 8% 수준인 천연가스 발전 비중을 낮춰 안정적인 ‘에너지 안보’ 태세를 구축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체코의 원자력 발전 비중은 향후 4기의 신규 원전이 건설되면 50%를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미로슬라브 크리스탈(Miroslav Kristal) 두코바니 구청장은 “무엇보다 사업을 통해 체코 에너지 자급자족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체코 정부는 건설 수주처로 전통적인 원전 강국인 미국, 프랑스와 신흥 강국인 한국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 CEZ는 2016년 입찰예비문서를 제출한 한국, 중국, 러시아, 미국, 프랑스 5개국 중 안보 문제로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했다.

3파전이 되면서 수주전은 더욱 치열해졌다. 두코바니 신규 원전 수주가 향후 건설 예정인 체코 원전 3기 수주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접국인 폴란드에서 발주 예정인 원전 6기 입찰에도 물꼬가 될 가능성이 크다. 폴란드는 2033년 루비아토보·코팔리노 지역에 첫 번째 원전을 짓고 2043년까지 5기를 더 지어 모두 6기의 원전을 지을 계획이다. 두코바니 5호기 건설 사업은 사실상 동유럽 원전 시장을 건 전초전인 셈이다.

각국 대표주자로 한국수력원자력과 프랑스전력공사(EDF),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나섰다. 한수원은 공사기간과 예산을 준수하는 ‘온 타임 온 버짓(On Time On Budget)’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EDF나 웨스팅하우스와 달리 공기를 맞추지 못한 사례가 없다.

일례로 EDF의 경우 프랑스 내에서 2012년 가동 목표로 건설을 시작한 플라망빌 원전 3호기 공사를 아직도 마무리 짓지 못했다. 웨스팅하우스 역시 미국 내에 건설한 보글 원전 준공을 4년 지연시킨 전력이 있다.

관건은 각 사가 CEZ가 제시한 두코바니 5호기 사양에 얼마나 부합하는 건설 계획을 내놓는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CEZ는 현재 1200㎿ 이하 규모라는 사양만을 밝힌 상태다. 베즈덱 담당은 “기술의 안전성과 신뢰성이 추가 수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두코바니(체코)= 글·사진 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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