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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원의 메디컬 인사이드] 끝날 팬데믹, 다가올 팬데믹


얼마 전 글로벌 백신회사의 독감백신 생산시설 취재차 영국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2년9개월 만의 해외 발걸음이라 그사이 달라진 세상이 궁금했다. 한국을 벗어나니 어디서나 ‘마스크 프리(free) 세상’이었다. 백신 생산시설 안에서조차 간단한 위생 가운과 모자 착용 외에 별다른 제약이 없었다.

코로나 유행 2년 동안 곤욕을 치렀던 영국은 올 상반기부터 일찌감치 엔데믹(endemic·풍토병화)을 선언하고 마스크 착용 등 대부분의 방역 조치를 풀었다. 영국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코로나 이전의 일상 회복이 이행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지난달 중순 “코로나 대유행을 끝낼 위치에 아직 도달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끝이 보인다”고 했다. 극히 말을 아껴온 세계 보건 수장의 입에서 처음으로 코로나의 ‘끝’이 언급된 것이다.

한국도 실내 마스크 의무 착용 등 한두 가지 방역 조치를 유지하고 있지만 조심스럽게 엔데믹을 준비하는 분위기다. 보건복지부 2차관은 최근 방송에 출연해 “올겨울 고비만 잘 넘기면 내년 3월쯤 유행이 거의 끝나고 그땐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감염병 전문가들 또한 코로나 팬데믹 종식을 시기의 문제일 뿐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이 시점에서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 끝날 팬데믹이라고 안도하며 되찾은 일상을 즐기기만 할 것인가. 팬데믹은 끝나더라도 바이러스는 계속 우리 곁에 남아 있고 또 어떤 변이를 일으켜 더 큰 팬데믹으로 둔갑해 다가올지 알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이행되는 지금부터가 매우 중요한 시기다. 3년 가까운 코로나 대유행 기간에 겪은 시행착오를 하나하나 되짚어보고 잘못된 것은 고치고 부족한 것은 보완해야 한다. 감염병 감시 시스템을 공고히 하며 의료·방역 인프라를 개선하고 국제사회와 공조해 다가올 팬데믹에 대비해야 한다.

빌 게이츠는 일찍이 호흡기바이러스에 의한 팬데믹 가능성을 제기해 왔고 전염성 강한 인플루엔자를 가장 먼저 꼽았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인플루엔자는 아니지만 호흡기를 공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국에서 만난 많은 의학자는 A형 인플루엔자, 특히 인체 감염을 일으키는 조류독감을 다음 팬데믹의 주인공으로 지목했다. 실제 조류독감은 매년 겨울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게이츠는 지난 6월 출간한 ‘넥스트 팬데믹을 대비하는 방법’에서 피해 최소화를 위한 구체적 실행 계획을 제시한 바 있다. 감염병이 감지되면 7일 내에 모든 국가와 사회가 통제 조치를 시작하고 100일 안에 팬데믹으로 번지지 않게 하며 6개월 안에 충분한 양의 백신을 생산·공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출장을 통해 영국 사회가 엔데믹 속에서도 마냥 손 놓고 있는 게 아니라 이처럼 다음 팬데믹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다는 인상을 깊게 받았다. 100년 이상 독감백신 한 우물만 파온 기업은 인플루엔자 팬데믹에 대응할 차세대 백신 개발을 서두르고 있었다. 영국 정부의 지원과 협력이 있어 가능함은 물론이다.

한국은 코로나 초창기 ‘K방역’이라는 브랜드를 낳았지만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은 다른 나라에 뒤처졌다. 일부 제약 기업이 다음 팬데믹을 대비해 기술 개발과 국제 협력에 나서고 정부도 지원을 약속했지만 팬데믹이 끝나도 계속될지는 의문이다.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실행력과 의지다.

프랭크 스노든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는 저서 ‘감염병과 사회’에서 감염병의 집단 발병과 더불어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집단 망각’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생물이 한 번씩 도전할 때마다 국내외에서 민관 가릴 것 없이 한동안 부산스럽게 움직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까맣게 잊고 만다는 것이다. 우리가 되새겨봐야 할 지점이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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