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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젤렌스키의 “너희 없이 살겠다”

신창호 국제부 선임기자


1978년생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년 시절 처음 배운 언어는 우크라이나어가 아닌 러시아어였다고 한다. 과학자 아버지와 엔지니어 어머니는 모두 유대인이었다. 유대인이지만 옛 소련 국적을 가진 가문이었다. 우크라이나어가 러시아어의 방언 정도로 취급되지만, 엄연히 다른 언어였던 점을 감안하면 그의 모국어가 러시아어였던 셈이다. 지금의 우크라이나 동부 크리비리흐에 정착한 부모 덕분에 젤렌스키는 1991년 독립한 우크라이나의 국적을 갖게 됐다. 키이우국립대 법학과를 졸업한 수재였지만 그는 다른 길을 걸었다. 법률가를 제쳐두고 방송국 코미디언 겸 프로듀서를 택했다.

2019년 대선에서 그는 부패한 우크라이나 정치를 풍자한 코미디 ‘국민의 종’ 주연을 맡은 덕분에 당선됐다. 기업인, 옛 소련 공산당 간부 등이었던 역대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커리어를 가진 정치 초년생이 최고 권력을 갖게 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젤렌스키의 리더십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물론 서방 정상들로부터도 ‘아마추어’ 취급을 당했다. 유럽 전역에서 국외자로 여겨지는 유대인인 데다 전쟁을 이끌 정도로 강인한 지도력을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그의 리더십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한 벌에 1500만원짜리 명품 정장을 입고 다니는 푸틴과 달리 젤렌스키의 옷차림은 항상 군용 티셔츠와 재킷, 국방색 바지다. 암살 위협에도 최전선을 시찰하고 유엔이나 미국·유럽연합(EU) 등 주요 서방국 의회에서 온라인 연설을 행하며 ‘우크라이나 지원 서방연대’를 만들어냈다. 수도 키이우가 러시아군의 위협을 받던 전쟁 초기에도 그와 아내, 아이들 등 일가족은 한 치도 이 도시를 벗어나지 않았다. 전장에서 부상당한 병사, 전쟁포로가 됐다 포로 교환으로 풀려난 군인, 적 전방을 침투해 전과를 올린 특수부대원 등은 젤렌스키의 초청으로 키이우 대통령궁에 와서 훈장을 받았다. 온갖 고난을 견뎌낸 그들이 대통령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엔 격의 없이 환한 미소가 가득하다. 모든 우크라이나군 장병의 사기를 젤렌스키가 앞장서서 올려준 셈이다.

지난달 11일 젤렌스키는 자신의 텔레그램에 우크라이나어로 쓴 글을 올렸다. ‘너희가 없으면 (천연)가스도 없다고? 너희 없이 살겠다. 너희가 없으면 빛도 없다고? 너희 없이 살겠다. 너희가 없으면 물도 없다고? 너희 없이 살겠다. 너희가 없으면 음식도 없다고? 너희 없이 살겠다.’ 러시아를 향해 “추위, 배고픔, 어둠, 목마름조차 너희가 말하는 ‘우정과 형제애’만큼 무섭고 끔찍하지 않다”고 쓴 그의 글에 대해 서방 언론들은 “역사에 남을 명문”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평범한 우크라이나 병사들과 대통령 지위를 가진 젤렌스키의 눈높이가 같고, 그가 병사들 마음 한가운데를 꿰뚫어보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조국을 지키겠다는 우크라이나인의 단호한 결심 말이다. 군 동원령 발동에 젊은이들이 갖은 방법을 총망라해 외국으로 피신하는 러시아의 혼란이 대서특필되고 있어도 우크라이나에선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러시아는 최근 전황이 불리해지자 핵무기 카드를 만지작거린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인의 눈에는 중과부적(衆寡不敵)의 숫자로 수개월 동안 마리우폴 철강소를 사수하다 포로가 됐던 아조우연대원들의 눈빛이, 그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석방시킨 젤렌스키의 의지가 러시아제 핵폭탄보다 더 무서워 보인다고 하면 과언일까.

신창호 국제부 선임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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