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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감호 있으나마나… 마약사범 1만6153명 중 18명뿐

[중독된 사람들, 비틀대는 한국] <하> 처벌·치료 동시에 이뤄져야

국민DB

대기업에 다니던 50대 A씨가 마약을 접한 건 2010년부터다. 지인 권유로 호기심에 시작한 필로폰은 그의 삶을 집어삼켰다. 12년 동안 4번 경찰에 붙잡혔고, 3번이나 구속됐다. 2018년 6월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은 것이 마지막이다. 그의 아내가 “남편이 이상한 행동을 한다”며 직접 112에 신고했다.

A씨는 가정마저 파탄나게 한 마약으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했다고 한다. 그는 혼자 힘으로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아 검사에게 치료감호 제도를 요청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검사는 그의 요청을 거부했다. A씨는 5일 국민일보에 “(거절된) 이유도 알 수 없었다. ‘수사 협조를 성의껏 하지 않아서 그런가’라고 혼자서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현행 사법체계는 마약사범에 대한 처벌과 치료를 병행토록 한다. 이 중 치료감호 제도는 형집행기간 중 일부를 약물중독재활센터에 수용해 중독 치료를 받도록 하는 처분이다. 다만 제도는 있되 돌아가는 기회는 드문 상황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마약사범 1만6153명 가운데 6205명이 재판에 넘겨졌는데, 이 중 약물중독재활센터에서 치료받은 수형자는 18명에 그쳤다.


치료감호를 거부당한 A씨는 수감 중 경남 창녕에 있는 국립부곡병원에 “출소하면 치료받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다. 당시엔 입원 허가를 받았지만, 2019년 12월 출소 후 얼마 안 있어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바람에 입원이 성사되지 않았다. 금단 증상에 시달리던 A씨는 수소문 끝에 지난해 7월 경기도 다르크 마약중독 재활치유센터에 어렵사리 들어갈 수 있었다. 치료감호가 거부된 지 3년 만이다. 그는 “마약을 끊는 건 개인 의지로는 불가능했다”고 돌아봤다. 이어 “치료감호소는 선택받은 사람만 갈 수 있는 곳인 줄 알았다”며 “진작 치료를 받았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겠냐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고 말했다.

임상현 다르크 마약중독 재활치유센터장은 “현행 사법체계는 치료보다는 처벌에 방점이 찍혀 있어 치료감호 요청이 거부되는 경우가 많다”며 “마약류 범죄는 재범률이 높아 눈앞의 처벌에 급급하면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사법 당국이 치료감호 필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 마약중독 상담사는 “징역형을 받을 정도면 재범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을 의미지만, 법조인들이 치료감호 필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해 처벌에만 집중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약사범 스스로 거부하는 경우도 많다. B씨는 지난 3월 필로폰 투약 후 엘리베이터에 탔다가 ‘감금됐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엘리베이터 천장을 모두 뜯어냈다. 이후 제 발로 경찰서를 찾아 자수했고,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검사가 치료감호를 청구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다. B씨에게 치료 의지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는 법정에서 “금단 증상이 없어 치료감호를 받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임 센터장은 “치료감호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형을 더 많이 사는 줄 오해하거나, 치료가 길어질 것 같아 겁을 먹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강제 치료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최진묵 인천 참사랑병원 중독상담실장은 “마약 혐의로 수감돼 재판받는 기간에 치료를 받도록 하는 ‘치료 명령제’를 도입해 치료를 강제해야 한다. 이행하지 않으면 형을 가중하면 된다”고 말했다.

박민지 신지호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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