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 물가·전기료에 일상도 위축… 체코, 원전 더 가까이

[리셋! 에너지 안보] <15> 친원전 여론 높은 체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체코에선 원전 지지 여론이 더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체코의 수도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에서 수만명이 에너지 가격 폭등에 대한 대책 등을 촉구하며 반정부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EPA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체코에서는 원자력발전 지지 여론이 더 강해졌다. 국제유가가 요동치면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데다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으로 겨울 난방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이다. 세계적 탈탄소 흐름 영향을 받았던 원전 지지 여론은 안정적 에너지원 확보를 위한 요구로 바뀌는 분위기다.

에너지 위기에 고조된 친원전 여론

유럽의 에너지 가격은 1년 새 급격하게 상승했다. 스페인의 전력 도매가격은 지난해 3월 ㎿h(메가와트시)당 54달러에서 올해 3월 312달러로 477% 올랐다. 프랑스(444%) 독일(394%) 영국(338%) 등의 전력 도매가격도 급등했다.

체코도 에너지 가격 급등의 직격탄을 맞았다. 체코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 체코의 물가 상승률은 17.5%로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원인은 급등한 에너지 가격 때문이었다. 체코 전기요금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 이상 상승한 것으로 추정됐다. 체코 재무부는 에너지 가격 상승세로 인해 연간 물가 상승률이 20%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전력이라는 단일 공급자가 있는 한국과 달리 체코에는 다수 전력 공급자가 있다. 이용하는 요금제도 개인마다 단기요금제, 장기요금제 등 모두 다르다. 이 때문에 전기료 인상 폭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다만 체코인들은 어떤 요금제로 계약했건 지난해보다 큰 폭의 전기요금 인상을 체감하고 있다.

급등한 물가와 전기료에 체코 국민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수도 프라하에 사는 요제프 리막은 지난달 19일(현지시간) “난방비가 부담스러워 기온이 10도 아래로 떨어졌는데도 집에서 난방을 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프라하의 최저기온은 6도였다. 같은 주에는 최저기온이 2도까지 낮아지는 등 초겨울 날씨를 보였다.

리막은 집에서 쉴 때도 외출복을 껴입는 등 난방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했다. 리막은 “학교에서는 난방 온도를 20도로 제한했다. 체육 시간 후에는 몸에 열이 나니까 17도 수준으로 유지한다고 (아이들로부터) 들었다”고 전했다. 유럽집행위원회(EC)에 따르면 프라하는 로마, 빈에 이어 지난해 대비 전기요금이 세 번째로 많이 상승한 도시다.

프라하에 사는 아델라는 가능하면 손을 냉수로 씻는다. 온수를 틀면 난방비가 나가기 때문이다. 물을 잠글 때도 수도꼭지가 냉수 쪽으로 돼 있는지 확인한다. 온수 쪽으로 수도꼭지가 돌아가 있으면 난방비가 나올까 걱정된다고 한다. 아델라는 “11월이 되면 집에서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끼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이 현실이 된 후 원전이 빨리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에너지 위기 이후 높아진 원전에 대한 체코 국민의 지지 여론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체코 여론조사업체 IBRS가 지난 5월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체코 국민의 68%가 원전을 지지한다. 이는 2009년(71%)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의 지지율이다. 지난해 5월 59%였던 원전 찬성 비율은 1년 사이 9% 포인트 상승했다. 전력 자급자족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졌다. 체코 국민의 96%는 체코가 전력을 자급자족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기업들 사이에서도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위해 원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국외 상황에 영향을 덜 받는 에너지원을 확보해 생산비 변동성을 낮춰야 하기 때문이다. 패트리 스메이칼 체코 트레비치시 상공회의소 회장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전기료가 인상되면서 원전산업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기업인이 늘고 있다. 기업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안정적으로 에너지가 공급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자립’ 위한 원전산업

친원전 여론에는 러시아에 대한 반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에서 들여오는 천연가스 비중을 낮추기 위해 원전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체코는 체코슬로바키아 시절이었던 1968년 구소련에 침공당했다. 당시를 기억하는 체코인들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상당히 높다. 공개적으로 반(反)러시아 감정을 표출하는 체코인도 많다. 프라하 시내 곳곳에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조롱하는 포스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스메이칼 회장은 “에너지 비용 인상 문제를 제쳐놓더라도 러시아에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기 위해 천연가스 비중을 낮춰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원전 추가 수주로 당장 전기 공급이 원활해진다거나 전기료가 낮아지지 않는다는 걸 체코인들도 알고 있다. 그러나 노후화된 원자로를 신형으로 대체하고 원전 발전 비중을 높이는 게 장기적으로 에너지 안보를 달성할 수 있는 길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지난해 새롭게 출범한 페트르 피알라 정부는 기후 보호를 정부 정책 우선순위로 꼽았다. 에너지 안보 및 자급자족, 기후 목표 달성과 저렴한 에너지 공급을 위해 원자력 및 재생에너지 개발 지원에 중점을 둔다는 계획이다. 현재 33% 수준인 원전 비율을 2040년 46~58%로 높인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석탄 및 재생 불가능한 고체연료는 현행 50%에서 11~21% 수준까지 줄일 계획이다. 바츨라브 도스탈 체코 과학기술대 교수는 “지금 우크라이나 사태로 에너지 위기를 경험하면서 체코가 최적의 에너지 믹스를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 원전산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프라하, 트레비치, 두코바니(체코)=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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