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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같은 편안함 ‘요코하마 포트 포’… 케어리버들의 일상 안식처

[보호종료, 새 동행의 시작] <9> 자립 후에도 손 잡아주는 일본

일본 요코하마시 ‘요코하마 포트 포’ 쉼터에서 자립준비 청년들과 스태프들이 함께 거실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다. 이 쉼터는 일본의 자립준비청년을 뜻하는 ‘케어리버’ 지원을 위해 비영리법인(NPO) 브릿지포스마일이 시에서 위탁을 받아 마련한 공간이다.

지난 15일 찾아간 일본 요코하마시 ‘요코하마 포트 포(Port for)’ 쉼터. 소파와 테이블이 놓인 널찍한 거실에는 각종 보드게임과 책들이 꽂혀 있고, 주방 냉장고는 식자재들로 가득 차 있었다. 평범한 가정집처럼 보이는 이곳은 일본의 자립준비청년을 뜻하는 ‘케어리버’(Care leaver) 지원을 위해 비영리법인(NPO) 브릿지포스마일이 시로부터 위탁을 받아 마련한 공간이다. 케어리버들이 편히 들러서 쉬어가라는 뜻에서 ‘거처’라고 불린다.

이날 3명의 스태프와 6명의 청년들은 함께 거실에 앉아 노트북으로 영상을 보거나 방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올해 초부터 거처를 이용하기 시작한 오카다 히로시(18)군은 매주 금, 토요일에 거처를 찾는다. 오카다군은 태어나자마자 보호시설에 맡겨진 후 위탁가정에서 자랐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만 18세가 되면 시설 밖 자립 여부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오카다군은 취업과 함께 독립을 선택했다.

그는 “늘 외로움을 느끼며 지내왔는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 거처를 찾게 됐다”며 “다함께 요리하거나 게임을 하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이 곳은 보호 기간이 짧거나 중도 퇴소한 청년들에게도 열려있다. 이토 유스케(24)씨는 고교 3학년 때 나가노현 시설에 입소해 성인이 된 이후에도 보호 기간을 1년 연장해 시설에서 보냈다. 이토씨는 “취업한 후에는 일이 바빠서 집에서는 밥을 전혀 해 먹지 못하는데, 여기서는 맛있는 집밥을 먹을 수 있어서 좋다”며 “지난 7월 먹었던 함박 스테이크는 너무 맛있어서 사진도 찍어뒀다”며 웃었다.

오후 5시가 되자 스태프 중 한 명인 야마모토 사요코(73)씨와 청년들이 함께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주방으로 모였다. 모두가 입을 모아 “요리를 잘 한다”고 칭찬하는 야마모토씨는 올해로 12년째 브릿지포스마일에서 케어리버들을 위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이날 저녁 메뉴는 양배추로 만든 교자였다. 케어리버들도 양배추를 씻고 상을 차리는 등 식사 준비를 도왔다. 300엔(약 2900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한끼 식사가 제공된다.

이곳은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로 운영된다. 공간 정리나 식사 준비, 케어리버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 등이 모두 자원봉사자의 몫이다. 식자재들 역시 자원봉사자가 보내준 것이다. 지난 9월에는 이곳을 찾는 청년들이 군마현에 있는 농가를 직접 찾아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이곳처럼 시설 보호가 종료된 케어리버들이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은 일본 곳곳에 있다. 브릿지포스마일은 요코하마시 외에도 도쿄도, 사가현, 구마모토현·구마모토시의 위탁을 받아 보호종료아동 사전 자립 지원인 ‘리빙케어’와 자립 사후관리 ‘애프터케어’를 도맡고 있다. 각 지자체에서 연간 적게는 1200만엔(약 1억1600만원), 많게는 2600만엔(약 2억5000만원)의 예산을 지원한다.

특히 요코하마와 사가현, 구마모토시 등에서 운영하는 거처는 케어리버들의 ‘고립’을 막기 위한 공간이다. 금·토·일요일과 공휴일에는 지금과 같은 거처로 운영하고, 평일에는 사전예약을 받아 상담을 진행하기도 한다. 하야시 게이코(48) 브릿지포스마일 대표는 “상황이 위급할 때가 아니더라도 일상적으로 관계를 맺고 자유롭게 다녀갈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며 “언제든 의지할 수 있는 어른과 동료가 있다는 안심을 주는 곳”이라고 말했다.

일본도 과거에는 시설 밖 자립준비청년들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 브릿지포스마일은 이들에 대한 애프터케어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2004년 자립 지원 준비만 전담하는 NPO로 설립됐다. 2010년에는 일본 내에서도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관심이 확대됐고, 정부가 애프터케어를 위한 예산을 마련해 지원하면서 브릿지포스마일과 같은 관련 기관도 늘어났다.

하야시 대표는 “우리 같은 NPO들이 시설 지원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비(非)시설 아이들과의 격차를 줄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아이들이 퇴소 후에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성을 만들어주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설·NPO 지원받아 자립후까지 4단계 케어
일본의 자립준비청년 지원체계


일본의 자립준비청년을 부르는 '케어리버(Care leaver)'는 아동보호시설, 위탁가정 등의 보호에서 벗어난 이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1997년 아동복지법 개정으로 '자립지원'이 법적으로 명문화됐고, 2004년부터는 아동복지시설이 의무적으로 아동자립지원계획을 수립하게 됐다. 2016년에는 보호아동의 자립이 '권리'로 법에 명시됐다.

현재 일본의 애프터케어는 보육원 등 시설에서 하는 지원과 NPO 등 전담 기관에서 맡는 지원이 병행되는 구조다. 시설에 들어가는 보호아동은 입소까지의 과정인 어드미션케어, 시설 내 케어인 인케어, 자립 준비 과정인 리빙케어, 자립 후 지원인 애프터케어 등 4단계의 지원을 받는다.

이에 비해 위탁가정의 경우 주로 자립지원 전담 기관을 통한 애프터케어가 중점적으로 이뤄진다. 2024년부터는 일본의 모든 지자체에서 의무적으로 NPO 등 관련 기관에 애프터케어를 위탁해야 한다. 애프터케어 전담 기관들은 거처 사업 외에도 시설 퇴소 전 교육, 퇴소 후 상담 등 여러 방면의 자립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케어리버들이 겪는 문제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지난해 4월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케어리버 10명 중 3명은 퇴소 후의 가장 큰 걱정으로 '주거'를 꼽았다. 일본의 현행 제도에서는 만 18세까지 시설에 머물 수 있고 희망할 경우 22세까지 연장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6월 법 개정으로 '18세의 벽'이라고도 불렸던 시설 연령 제한이 2024년부터는 없어진다. 정부는 월 최대 10만엔(약 96만원)의 자립지원 대출금 제도를 운영하는데, 5년간 취업 상태를 유지하면 상환이 면제된다.

요코하마=글·사진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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