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내일을 열며] 공공도서관과 민주주의

장지영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일반 대중이 공공도서관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무료 개방되는 공공도서관의 등장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근대 이전까지 도서관은 왕, 귀족, 성직자 등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글을 읽고 도서관에 출입할 수 있는 소수가 지식과 정보를 독점했다. 하지만 근대 산업화 및 민주주의의 성장과 함께 공공도서관의 개념이 싹트기 시작했다.

영국은 공공도서관의 요람이다. 18세기 산업혁명이 시작된 영국에서는 교육 보급으로 문해율과 시민의식이 높아지면서 준공공 성격의 회원제 도서관이 등장했다. 그리고 1850년 공적자금을 투입해 도서관을 건립하고, 무료로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공공도서관법이 제정됐다. 다만 영국이 공공도서관법을 처음 제정했지만 실제로 공적자금으로 도서관을 설립하고 시민에게 장서를 무료 대출한 것은 미국 보스턴이 먼저다. 1854년 개관한 보스턴 공공도서관은 현대적 공공도서관의 이념을 처음 실현했다. 영국과 미국에선 19세기 중반 이후 평생교육을 제공하고 민주주의 시민의식을 높이기 위한 사회 거점으로서 공공도서관이 곳곳에 설립됐으며, 각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한국에서 근대적인 공공도서관은 1901년 설립된 부산시립도서관이 그 출발점이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와 6·25전쟁을 겪는 바람에 공공도서관은 광복 10년 후인 1955년에 겨우 12곳이었다. 이후에도 공공도서관 활성화의 근간인 도서관법이 1963년 처음 제정될 정도로 발전이 더뎠다.

한국의 공공도서관은 경제발전의 토대 위에 1987년 도서관법 전면 개정을 계기로 전환점을 맞이했다. 국가도서관통계시스템에 따르면 2020년 한국의 공공도서관은 1172곳이다. 국가도서관통계시스템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기 시작한 2007년 600곳이었던 것과 비교해 빠르게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국가별 공공도서관 1곳당 인구수는 4만4223명으로 미국 3만6333명(2019년), 호주 1만5441명, 독일 1만2215명, 일본 3만8141명(이상 2020년) 등에 비해 많다. 여전히 더 많은 공공도서관이 필요한 상태다.

한국의 부족한 공공도서관을 메워주는 것이 ‘작은도서관’이다. 작은도서관은 지역주민에게 지식·정보와 다양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해 공립 또는 사립으로 운영되는 도서관으로 공공도서관보다 규모가 작다. 1990년대 중반 작은도서관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진 끝에 2012년 작은도서관진흥법이 제정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지원 근거까지 마련됐다. 민간 영역에 공공서비스인 도서관 서비스를 많이 위임한 작은도서관은 한국의 특수한 현상이다. 2021년 기준 전국에 6448곳(사립 4936곳, 공립 1512곳)인 작은도서관은 2019년 역대 최대인 6672곳까지 늘어났지만 이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경우 공공도서관은 물론이고 그 역할을 나누어 가진 작은도서관도 공공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도서관에 대한 박강수 마포구청장의 인식은 수십년 전 수준에 머무르는 듯하다. 최근 마포중앙도서관의 예산을 30% 삭감하고 공립 작은도서관을 스터디 카페로 바꾸겠다는 방침을 밝혀 논란의 대상이 됐다. 박 구청장이 도서관을 단순히 독서와 공부 공간으로밖에 보지 않는 것이 드러나면서 문화예술계의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도서관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둥이기 때문에 선진국일수록 활성화에 적극적이다. 현대사회에선 도서관이 단순한 도서대출을 넘어 지역주민을 위한 복합 문화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 박 구청장은 도서관에 대한 퇴행적인 인식과 빈곤한 철학을 하루빨리 버리길 바란다.

장지영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jyja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