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주 하나님을 만나다] 긴 우기·잦은 태풍 이겨낸 든든한 교회 내부엔 한옥의 멋스러움이…

<16> 필리핀 시부한인교회

위에서 내려다본 필리핀 시부한인교회의 전경. 필리핀 건축 양식인 콜로니얼 스타일이 돋보인다. 아래 사진은 종탑의 십자가가 태풍과 지진에도 흔들리지 않게 박공의 꼭짓점에 뿌리처럼 박혀 있는 모습. 이해욱 교수, 시부한인교회 제공

필리핀은 약 400년간 스페인과 미국 일본의 식민지 시대를 겪었고, 이는 필리핀의 건축 양식에도 고스란히 투영됐다. 그중 320여 년간 필리핀을 통치한 스페인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돌로 만든 집이라는 뜻의 ‘바하이 나 바토’는 주택 2층까지 벽돌을 사용하는 독특한 건축 양식 가운데 하나다. 전통 가옥인 초가와 벽돌, 박공지붕을 결합한 콜로니얼 스타일(식민지 양식)이다.

필리핀 세부의 시부한인교회는 바하이 나 바토 양식을 따르면서도 내부는 한옥 콘셉트인 특이한 건축물이다. ‘지역 주민은 섬기고 한인 성도는 교회에서 위로받길 원한다’는 건축가 이해욱 교수와 박지덕 담임목사의 지론이 담겨 있는 건축물이다.

박지덕(왼쪽 두 번째) 목사와 건축가 이해욱(오른쪽) 교수 등이 필리핀 현지에 있는 이 교수 숙소에서 건축 설계 회의를 하는 모습. 아래는 시부한인교회 초기 단면도. 이해욱 교수, 시부한인교회 제공

건축, 선교적 교회를 담다

우송대 건축학과 교수를 역임한 이해욱 교수가 시부교회 건축을 하며 첫손에 꼽은 건 ‘멋있게 짓지 말자’였다.

이 교수는 “현대 사회에서 교회가 갖는 역할을 생각했다. 유럽의 성당처럼 화려하고 멋있기보다 사람들 삶 속에 겸손한 모습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성도들에게 설명했다”고 말했다. 대신 내부는 성도들이 교회에 들어오는 순간 위로와 위안을 느낄 수 있도록 한옥 콘셉트를 잡았다.

이 교수가 한국도 아닌 필리핀에 있는 시부교회 건축을 맡게 된 건 남다른 인연과 과정을 통해서다. 그는 2002년 가족과 함께 세부를 찾았다. 당시 한국에선 세부로 영어 연수 가는 게 붐이었다. 자녀 교육을 위해 세부에 온 이 교수가 주일 예배를 드리려고 찾은 곳이 시부교회다. 이 교수가 예배한 그 날은 교회가 좋은 건축가를 보내 달라고 닷새간 금식기도를 드린 뒤 맞은 주일이었다. 예배 후 박 목사를 만난 이 교수는 자신이 생각하는 교회 건축과 같은 생각을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이 교수는 모든 설계를 교회에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공사 기간 중엔 자비로 비행기 표를 끊어 6차례나 시부교회를 찾았다. 그럼에도 이 교수는 ‘재능기부’라는 단어에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가장 재미있게 일한 건축이고 어렵거나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면서 “교회와 성도가 5년간 건축을 위해 한 푼씩 모은 점도 좋았다. 돈이 없어 못 한다는 걱정도 들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국식 마당’ 재현 시도

2004년 4월 건축이 시작됐다. 한국과 다른 건축 환경에서 모든 게 쉽지 않은데도 계획한 대로 세워졌다. 그 중 ‘코리안 코트(Korean Court)’는 말 그대로 한국식 마당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마당은 한옥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다. 방문이 마당을 향해 밖으로 열리고 반대로 대문은 마당 쪽인 안으로 열리는 구조를 갖춘 이유이기도 하다. 교회도 외벽은 기왓장을 올린 담장이 됐고 내부 공간은 너른 마당처럼 펼쳐졌다. 마당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천장 대신 어촌에서 사용하는 나일론 줄을 엮어 그 위에 천을 올려 천막 겸 차양을 만들었다.

한국식 마당 개념을 도입한 ‘코리안 코트’의 모습과 한옥 풍의 담벼락. 이해욱 교수, 시부한인교회 제공

한옥의 중심이 되는 마당처럼 시부교회의 코리안 코트도 새 신자를 맞이하고 교제하는 공간으로 활용됐다. 아쉽게도 코리안 코트는 현재 이름만 남아 있다. 교회로선 우기가 길고 태풍이 잦은 필리핀에서 천막 형태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고 공간도 더 필요했다. 결국 천막을 걷어내고 지붕을 새로 씌웠다. 박 목사는 “이 교수도 아쉬워하는 부분”이라고 했다.

한국적 느낌을 낼 자재는 비용을 고려해 직접 만들었다. 담장 기와는 배수에 사용하는 플라스틱 파이프를 톱으로 잘라내고 시멘트를 덧씌운 뒤 색을 칠했다. 예배당 측면의 문과 창은 필리핀식 격자형 나무 문짝을 한국식으로 변형했다.

한옥의 목제 문틀을 떠올리게 만드는 예배당의 창문. 이해욱 교수, 시부한인교회 제공

변수가 많으니 설계도는 쪽대본처럼 만들어졌다. 이 교수가 묵는 숙소는 작업 공간이자 회의 장소가 됐다. 이 교수는 “숙소에서 의자를 붙여놓고 작업하거나 공사장에 텐트 치고 설계도를 그리면 그걸 복사해서 공사 현장에서 나눠주는 방식이었다. 12장이던 도면은 어느새 50장이 됐다”고 했다.

성도들도 팔 걷고 건축 동참

부족한 재정에도 자재 선택부터 콘센트 위치까지 세심한 정성이 들어갔다. 창호 문은 다소 비용이 들어도 까마공이란 목재를 사용했다. 개미가 워낙 많은 필리핀에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개미가 나무를 갉아 먹게 되면 내부에 구멍이 생기면서 내구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까마공은 나무가 단단해 개미가 갉아먹지 않았다.

예배당 장의자는 앉는 면이 등 쪽 방향으로 경사지게 디자인했다. 앞으로 무게가 쏠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이 교수도 “샌드 페버라고 굵은 모래인데 외장과 내장에 모두 사용했다. 지속성이 있고 관리도 용이한 소재”라고 설명했다.

전기료 절감을 위해 강대상 뒷벽 사이엔 틈을 내고 60㎝ 너비 창을 만들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은 일조량에 따라 십자가 위에 다양한 무늬를 만들어냈다. 박공형태의 삼각 종탑에 십자가를 세울 때는 고민도 컸다. 각도는 45도로 가파른 데다 2002년 인근 지역에 7.2 강진이 발생했고, 태풍이 잦아 바람은 늘 거셌다. 안전을 고려해 십자가는 박공지붕의 꼭짓점에 뿌리내리듯 박혔다.

시부한인교회의 내부 모습. 전기료 절감을 위해 강대상 뒤로 만든 측창으로 빛이 들어오도록 했다. 이해욱 교수, 시부한인교회 제공

성도들도 직접 건축에 참여했다. 이 교수가 예를 든 게 예배당 강대상 뒷벽이다.

그는 “울긋불긋해 보이는 이 돌은 세부의 막탄에서 굴러다니는 돌로 막탄 스톤이라 불린다”면서 “돈을 주고 사 오면 비싸니 장로들이 각각 1m, 3m씩 벽돌을 사 왔다. 필리핀 현지인은 뒷산에서 돌을 캐서 가져와 울퉁불퉁한 돌을 벽돌처럼 네모나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2005년 2월 완공과 함께 공사는 10개월 만에 마무리됐다. 다들 필리핀에선 있을 수 없는 속도라고들 했다. 박 목사는 “성도들이 현장에서 함께 기도하며 일손을 도우니 필리핀 사람들도 마냥 느긋할 수는 없었을 듯하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신실한 신앙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면서 “시부교회 건축 이후 좋은 일도 많이 생겼다. 감사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그는 2012년부터 2년 연속 세계건축연맹(UIA)과 한국건축가협회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국제건축가 100인’에 이름을 올렸고 2017년엔 서울세계건축대회행사 총감독을 역임했다. 현재 이 교수는 몽골 몽골리아 인터내셔널 유니버시티(MIU)에서 기획처장 겸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세부지역 12개 교회 개척까지

시부교회는 필리핀에 거주하던 한인들의 성경공부 모임으로 시작됐다. 1980년대만 해도 치대 약대에서 공부하려고 필리핀을 찾는 한국 사람이 많았고 이들 중 믿음 있는 사람들이 87년 교회를 세웠다. 박 목사는 94년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파송을 받은 시부교회 4대 목사다.

세부 분위기는 2000년부터 달라졌다. 휴양지 신혼여행지로 알려졌고 직항까지 생기면서 한국 관광객들이 세부를 찾았고 덩달아 교회를 찾는 사람도 늘었다. 비사야 나사렛 바이블 칼리지 2층 강당을 빌려 예배하던 중 성도들 사이에서 교회 건축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성도들의 헌금이 모였고, 한국교회도 힘을 보탰다. 여행 중 예배하러 온 이들도 500페소(약 1만2500원)씩 건축 헌금을 내고 갔다.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되는 경험을 했다.

그 사이 제주도 2.5배 크기인 세부지역에 12개 교회도 개척했다. 교회 개척은 구제 사역에서 시작됐다. 집이 없어 공동묘지에 사는 사람, 해상 위에 사는 빈민층 등을 보살폈다. 2019년 같은 교단에서 파송한 윤원우 협력목사가 합류하면서 한인교회, 선교교회의 역할에도 더 힘을 내게 됐다. 개척한 교회엔 현지인을 목회자로 세웠다.

세부(필리핀)=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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