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이 밥 주자’ 을숙도 고양이·철새 공존 작전 ‘먹통’ [이슈&탐사]

[두 얼굴의 고양이] ④설익은 공존실험의 한계

한쪽 날개가 없어 날지 못하는 큰고니를 비롯한 새들이 지난달 13일 부산 사하구 을숙도 안 풀섬에 앉아 쉬고 있다. 물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갈대숲에는 야생고양이들이 서식하고 있다. 을숙도=이한형 기자

철조망을 넘어 갈대밭 사이로 한참을 걸었다. 길고 가는 목을 한껏 추켜세운 새가 먼발치에 모습을 드러냈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큰고니였다. 노란 바탕에 끝이 검은 부리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순백색 깃털도 은빛 갈대와 어우러져 기품 있게 반짝였다. 이 새들은 작은 숲 사이로 흐르는 물 위 풀섬에 앉아 조용히 털을 고르고 있었다. 그 뒤로 쇠기러기, 청둥오리가 낙동강 하구의 갈바람을 맞으며 물 위를 평화롭게 유영했다.

이곳은 부산 을숙도 안에 조성된 물새류 대체서식지다. 다치거나 병들어 치료를 받고도 완전한 야생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새들이 남은 생을 보내는 곳이다. 생태계와 최대한 비슷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울타리를 쳐서 방문객과 야생동물의 침입을 막고 있었다. 물 위를 한동안 주시하던 부산야생동물치료센터 김용우 수의사가 “큰고니 두 마리는 한쪽 날개가 없고, 쇠기러기도 끝이 잘려 날지 못해요”라고 귀띔했다.

이때 물가에서 20여m 떨어진 나무 갑판 옆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포착됐다. 누런 털의 고양이는 연신 물가에 시선을 집중한 채 주변을 어슬렁댔다. 인기척을 느끼자 날렵하게 갈대밭으로 몸을 숨겼는데 해 질 무렵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여기가 저 고양이의 활동 영역이에요. 흰 털을 가진 놈도 자주 보이곤 해요. 새들은 고양이가 보이기만 해도 큰 위협을 느끼고 무서워하죠.” 김 수의사가 걱정했다.

철새 천국은 어쩌다 ‘고양이섬’이 됐나

부산 사하구 을숙도에 서식하는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난달 13일 갈대밭에서 몸을 웅크린 채 경계하고 있다. 야생동물은 이런 고양이와 눈만 마주쳐도 큰 위협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을숙도=이한형 기자

취재팀이 지난달 13∼14일 찾은 을숙도에서는 철새와 고양이의 ‘공존실험’이 한창이었다. 도심 바로 옆에 자리 잡은 3.17㎢ 면적의 연륙섬(육지와 연결된 섬)은 일종의 테스트베드(시험장)였다. 1970년대까지 동양 최대 철새 도래지였던 을숙도는 원래 야생동물의 천국이었다. 바닷물과 민물이 교차해 만들어낸 풍부한 먹이원이 해마다 철새를 불러모았다. 쓰레기 매립 등 무분별한 훼손으로 개체수가 크게 줄었지만 그 기능은 여전하다. 부산시 낙동강하구에코센터가 올해 7월 낸 ‘2021년 생태계조사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이곳을 터전 삼거나 거쳐 간 것으로 파악된 조류가 174종 2만1879마리다.

이런 을숙도에 고양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불과 10여년 전이다. 공원화와 함께 인적이 잦아지면서 고양이도 하나둘 늘었다. 대다수가 버려진 고양이였는데 이를 불쌍히 여긴 사람들이 간헐적으로 밥을 주곤 했다고 한다. 그사이 ‘반려묘를 을숙도에 버리면 굶어 죽진 않겠다’는 비뚤어진 인식도 생겨났다. 도로로 연결된 섬이라 데리고 와서 놓고 가기도 쉬웠다. 30년간 낙동강 하구 보호활동을 해온 백해주 초록생활 대표는 “을숙도엔 원래 고양이가 없었다”며 “습해서 살기 좋은 공간도 아닌데 유기하고 밥을 주고 번식하는 게 반복되면서 지금은 100여 마리로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야생화한 고양이는 다른 섬들에서처럼 새를 공격하거나 알을 깨서 먹는 등 숱한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결국 2016년 지방자치단체가 개입했는데 관할인 부산 사하구는 을숙도 내 고양이를 섬 밖으로 내보내는 대신 철새와 함께 살아가는 방안을 내놨다. 세칭 ‘캣맘’으로 불리는 애묘인들이 모인 한 동물보호단체의 건의로 사하구가 시 예산을 지원받아 을숙도 곳곳에 26개 급식소를 설치한 것도 이 무렵이다. 먹이를 배불리 먹은 고양이는 굳이 새 사냥에 나서지 않을 것이고 중성화수술을 위한 포획도 쉽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있었다.

부산 사하구 을숙도에 마련된 고양이 급식소. 사하구는 시 예산을 지원받아 이 급식소를 을숙도 곳곳에 설치해 운영 중이다. 을숙도=이한형 기자

하지만 큰기러기, 노랑부리저어새, 검은머리물떼새 등 을숙도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종이 최상위 포식자인 고양이와 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허기와 상관없이 사냥하는 고양이의 습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데다 어떻게 어우러져 살아가도록 할지에 대한 고민도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실험의 시행착오는 300만 반려묘 시대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가 고양이 문제와 그 대응을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데 참고할 만한 시사점을 던진다.

영역 분리 없는 공생의 한계

을숙도 공존실험의 가장 큰 문제는 고양이와 철새의 서식지가 뒤섞여 있다는 점이다. 현재 100여 마리 고양이는 섬 전역에 발을 뻗어 있다. 에코센터에 따르면 담수습지, 갯벌습지 등으로 이뤄진 출입제한구역에서도 고양이 발자국과 배설물이 확인된다. 겨울 철새가 주로 서식하는 공간에까지 침입한 것이다. “통상 다 큰 고양이를 잡아 먼 곳에 풀어놓으면 이내 또 다른 개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곤 했는데 올해 들어선 새끼와 함께 어슬렁대는 게 보여요. 분명히 수가 많아지고 있다는 증거죠.” 야생동물치료센터의 한 수의사가 말했다.


그 주요 원인으로 무분별하게 설치된 고양이 먹이터가 꼽힌다. 을숙도는 낙동강하굿둑이 설치된 낙동남로를 기준으로 남측 철새공원과 북측 생태공원으로 구분된다. 이 중 철새공원은 출입구역인 교육·이용지구와 출입제한구역인 완충지구, 핵심보전지구로 나뉜다. 취재팀이 야생동물치료센터 관계자와 동행해 을숙도 곳곳을 돌아본 결과 완충지구 안에서도 고양이 급식소가 다수 발견됐다. 물새들이 노니는 습지 코앞에 급식소가 놓여 있기도 했다.

애초 사하구는 에코센터와 한국수자원공사 등 관계기관과 협의를 거쳐 공원 입구 등 출입구역을 중심으로 고양이 급식소를 뒀지만 정확한 위치나 수를 관리하지는 않았다. 실질적 운영은 동물보호단체 활동가와 애묘인들이 도맡아 했다. 이들이 자체 판단 따라 급식소를 옮기거나 출입제한구역에 설치해도 지자체가 즉시 파악하지 못한 이유다.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장소에 급식소가 무단으로 설치됐다가 철거당하는 일이 반복돼 왔다.

부산 사하구 을숙도에 서식 중인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난달 13일 갈대밭 인근 나무 갑판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이 고양이는 물 위를 유영하던 새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을숙도=이한형 기자

고양이만 보호하겠다는 식의 극성 민원도 적극적 대응을 어렵게 했다. 추위를 피해 쉼터에 들어간 너구리를 보고 “고양이 밥을 뺏어 먹으니 쫓아내 달라”는 민원까지 있었다고 한다. 을숙도 터줏대감인 너구리가 되레 외래종인 고양이 때문에 찬밥신세를 당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번식 속도 못 따라가는 중성화사업

공존 필수 요건인 TNR(포획-중성화-방사)이 제대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2016년부터 지난달 26일까지 약 6년10개월 동안 이곳에서 중성화수술을 받은 고양이는 78마리에 그친다. 첫해 32마리를 수술한 이래 이듬해부터 4년간 실적이 ‘제로(0)’였다. 재개한 지난해에도 5마리를 중성화했을 뿐이다. 올해는 41마리로 그나마 나은 편이다. 민간에서 진행한 수술까지 더하면 중성화한 고양이는 조금 더 많겠지만 번식 속도와 비교하면 개체수 억제에는 역부족이다.


중성화수술을 위한 포획도 급식소 주변 고양이만 잡거나 민원이 집중적으로 제기될 때만 실시하는 등 형식적인 수준이다. 최근 야생동물치료센터가 생후 5개월 된 고양이를 포획해 사하구에 연락했더니 “TNR 사업을 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한다.

반려동물 임상전문가인 조숙랑 부산야생동물치료센터 수의사는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개체수 억제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포획 개체군에 대해 즉각적이고 대대적인 중성화 수술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호주처럼 희귀종을 멸종시킨 고양이를 살처분하는 비인도적인 방법이 을숙도에서 나와선 안 된다”고 말했다.

공존 회의론에 ‘캣프리존’ 주장 대두

상황이 이러니 공존에 대한 회의론도 상당하다. 습성을 무시한 채 고양이를 반려동물로만 바라보며 공존의 이상을 좇는 건 순진한 생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백해주 대표는 “고양이는 사람이 키우지 않으면 반려묘가 될 수 없고 (야생에서) 공격성을 갖는 동물인데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좋은 점만 바라본다”며 “(모든 고양이를 반려묘처럼 생각하는) 시대적 흐름 때문에 지자체도 이를 제재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부산 사하구 을숙도 입구에서 지난달 14일 발견된 중대백로 사체.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지만 사체 형태나 발견 장소로 미뤄볼 때 맹금류나 삵의 공격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삵은 고양이와 달리 사냥한 사체를 그대로 두지 않고 먹는다고 한다. 을숙도=이한형 기자

백 대표는 매년 을숙도에서 직접 목격한 야생고양이의 공격이 10건 이상이라며 눈에 띄지 않는 경우까지 합치면 피해는 배가 될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국립공원이나 철새 서식지에서만이라도 먹이 주는 행위를 금지해야 한다”며 철새 보호라는 공간 본연의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고양이 서식지를 통째 섬 밖으로 옮겨 을숙도 전역을 ‘캣프리존’(고양이 없는 공간)으로 만드는 방안까지 고려해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용우 수의사도 “현재 생태계 균형이 어느 정도 맞춰졌는지 알 순 없지만 고양이가 더 늘어나면 좋지 않은 영향이 있을 건 분명하다”며 “을숙도만큼은 새들에게 양보해 달라”고 호소했다.

을숙도, 해법 찾을까

을숙도 입구에 설치된 전시진 전 부산환경운동연합 고문의 컨테이너 사무실 한구석에는 고양이 사료 포대가 쌓여 있었다. 25년째 큰고니 밥을 주면서 ‘을숙도 고니아빠’로 불리는 그는 고양이도 철새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인간이 을숙도를 훼손하고 개발하는 과정에서 이곳에 들어온 생명체 중 하나가 고양이이기 때문이다.

전시진 전 부산환경운동연합 고문이 지난달 14일 부산 사하구 을숙도에 설치된 고양이 급식소 옆에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전 전 고문은 철새와 고양이가 서식하는 경계를 더욱 뚜렷하게 구분 지어야 성공적 공생이 가능하다고 본다. 을숙도=이한형 기자

전 고문은 “황새, 저어새가 많이 왔던 자리에 인간이 공원을 만들고 자꾸 서식지를 침범하니 지금은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다”며 “고양이는 그 과정에서 (인간의 유기로) 생긴 부산물에 가깝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성공적 공생을 위해선 철새와 고양이가 서식하는 경계를 지금보다 더욱 뚜렷하게 구분 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먹이를 훨씬 적극적으로 주고 상시적인 TNR로 공격성을 줄여나가면 철새가 서식하는 섬 안쪽까지 고양이가 들어갈 이유가 없어진다고 그는 주장했다. 섬 전체가 아닌 섬 내에 명확한 캣프리존 설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TNR을 비용이 아닌 환경과 동물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돈을 더 많이 써도 돼요. 사업을 중점적으로 해 나가면 지자체가 (오히려) 칭찬을 들을 겁니다.”

부산 사하구 을숙도에 서식하는 고양이 무리가 지난달 14일 급식소 주변 풀밭에서 쉬고 있다. 을숙도=박장군 기자

전 고문도 고양이에게 상위 포식자가 없는 상황이니 사람이 개입해 어느 정도 제재하는 방식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그는 “그렇게 하다 보면 을숙도가 공존의 롤모델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며 “고양이도, 새도, 인간도 좋은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조류 전문가인 이원호 에코센터 박사도 “고양이 자체보단 유기나 무분별한 입양 등 인간의 인위적 욕심이 문제를 키웠다”며 “지금이라도 고양이와 다른 야생동물이 자연 속에서 어떻게 공존하도록 할지 관리·조절하는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슈&탐사팀 강창욱 이동환 정진영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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