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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풍자를 이겨내는 법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놀랍게도 찰리 채플린은 아돌프 히틀러의 콧수염을 따라 하지 않았다. 1889년 4월생 동갑내기인 희극왕과 독재자는 동시대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았다. 딱 하나 공통점이라면 두 사람 모두 코 밑에 병풍처럼 인중만 쏙 가린 검은 콧수염을 지녔다는 점이다. 언뜻 걸작 영화 ‘위대한 독재자’에서 독재자 힌켈과 이발사 찰리의 1인 2역을 해낸 채플린이 히틀러를 따라 해 콧수염을 붙였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채플린 연구의 대가이자 극작가인 오노 히로유키의 저서에 따르면 채플린은 1914년 개그 소재를 고민한 끝에 훗날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작은 중절모와 낡고 커다란 구두, 꽉 끼는 상의를 선택했다. 혹시나 자신이 어려 보여 계약이 파기될까 걱정해 콧수염을 붙였다. 당시 널리 알려진 스타 채플린에 비하면 히틀러는 이름 없는 군인에 불과했다. 그러니 콧수염 원조 전쟁 승리자는 당연 채플린이다.

빌헬름 2세부터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에 이르기까지 독일 지도자에게 콧수염은 권력자의 권위를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히틀러도 나름대로 개성 있게 길렀는데, 아뿔싸! 채플린의 것과 이렇게 똑같을 줄이야. 또 채플린의 인기가 독일에서도 어마어마해서 1932년 대통령 선거에선 투표용지에 채플린을 쓴 사람이 나올 정도였다.

나치는 눈엣가시 같은 채플린을 핍박했다. 영화와 서적 등 그와 관련된 창작물을 금지했고 그의 영화가 독일 작품을 표절했다며 억지 소송전을 벌였다. ‘선동의 제왕’으로 불리는 요제프 괴벨스는 언론에 채플린 언급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콧수염을 비교하는 기사 등도 철저히 검열했다.

그런데 핍박이 심해질수록 독일 밖에선 콧수염을 비교하는 풍자가 잇따랐다. 1933년 9월 7일 미국 뉴욕 월드 텔레그램에는 ‘할리우드의 공포’라는 만평이 실렸다. 콧수염을 밀어 버리려는 채플린을 말리려고 히틀러가 다급하게 달려드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묘사돼 있다. 만평 한쪽엔 ‘채플린은 유명한 콧수염을 밀어 없앨 예정. 히틀러의 콧수염과 비슷하다며 독일에서 분노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나치와 히틀러의 가장 큰 적은 총과 칼이 아닌 웃음과 풍자라는 분석이 이어졌다.

얼마 전 2022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금상을 받은 고등학생의 풍자 만평 ‘윤석열차’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토마스 기차에 김건희 여사와 칼을 든 검사들이 타고 있고 그 열차를 사람들이 무서워 피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거칠고 야만적인 인터넷 정글에 익숙해졌는지 내 눈엔 피식 웃고 넘길 법한 만화쯤으로 보이지만 정부 판단은 달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에서 정치적인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이 상을 받고 전시된 건 다른 학생의 만화 창작 욕구를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이례적으로 하루에 두 차례나 설명 자료를 내 행사를 주최한 만화영상진흥원을 상대로 엄중히 경고하고 책임을 묻겠다고도 했다.

물론 풍자라고 해서 모두 이해하고 받아들여선 안 된다. 마호메트의 엉덩이까지 드러냈던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앱도의 만평처럼 기본적인 예의조차 갖추지 않고 모욕과 조롱을 일삼는다면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채플린과 히틀러의 콧수염 전쟁처럼 강하게 대처할수록 풍자의 대상은 더 깊은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웃음으로 공격하니 화내면 지게 되는 셈이다. 풍자 대상이 된 입장에선 참으로 고약한 게임이기도 하다. 그러니 웬만하면 ‘허허,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됐군’이라며 정신승리를 하는 게 최선이다. 안 그러면 웃음 공격조차 받아낼 그릇도 못 되는 ‘좁쌀 리더’라는 평가를 받게 될 테니.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kitt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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