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없는 건물… ‘보호아동’ 사회적 낙인 없이 홀로서기 준비

[보호종료, 새 동행의 시작] <12> 삼성 희망디딤돌 충남센터

삼성 희망디딤돌 관계자들이 23일 충남 아산의 희망디딤돌 충남센터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이곳은 보호종료아동과 보호아동이 건강하게 자립할 수 있도록 이음새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현재 전국에서 11개의 희망디딤돌 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최현규 기자

충남 아산에 있는 희망디딤돌 충남센터는 눈에 띄는 간판 없이 20층 높이 오피스텔 건물 안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 살거나 이곳을 찾는 보호종료아동(자립준비청년)과 보호아동이 사회적 낙인에 대한 걱정 없이 자유롭게 공간을 드나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2층 사무실 앞에 도착한 후에야 센터 이름이 적힌 명패를 발견할 정도로, 존재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보호아동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자립지원 업무를 총괄하는 박수진(42) 부장은 23일 국민일보와 만나 “보호종료아동들의 인권을 대변하고 이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게 우리 기관의 가치관”이라며 “청년들이 긍정적인 마음으로 자립을 준비하고 사회에서 환영받는 존재라는 걸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인식을 개선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센터는 삼성전자의 사회공헌 사업인 삼성 희망디딤돌의 지원을 받아 지난해 6월 문을 열었다. 이곳을 비롯해 현재 전국에서 11개 희망디딤돌 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3년간 삼성의 지원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한 뒤 지자체에 기부채납하는 방식이다. 삼성전자 사회공헌단 최실근(50) 프로는 “센터 개소 조건 자체가 3년 후에도 지자체의 지원으로 시설이 계속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시범운영 기간에 지자체 조례를 개정하고 예산을 마련하는 등의 절차가 함께 이뤄진다”고 말했다.

공간은 사무실과 공용 공간, 주거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보호종료아동이 거주하는 ‘청년이음주택’ 20개실과 보호아동들이 자립 전에 지내볼 수 있는 체험실 6개실 등 26개 방은 2층 사무실과는 다른 층에 분산돼 있다. 청년들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보호종료아동이라는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침대와 전자레인지 등 기본 옵션이 갖춰진 약 7평 크기 원룸 형태의 청년이음주택은 시설 등을 퇴소한 지 5년 이내 보호종료아동이 입주할 수 있다. 보증금 150만원을 내면 별도 월세 없이 최대 2년간 머물 수 있다. 현재는 15명의 청년이 입주해 있다.

센터 입소는 부동산 계약 경험이 없는 청소년들을 위해 실제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 같은 절차로 진행된다. 입주 청년들은 금융컨설팅, 요리와 청소 등 자립 교육 외에도 향후 진로를 대비한 교육도 각자가 선택해 제공받을 수 있다. 사무실 옆에는 주방과 냉장고, 건조기, TV·게임기 및 쉴 수 있는 테이블 등을 갖춘 공용 공간이 있어 입주 청년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냉장고에는 밀키트나 간식거리가 채워진다.

자립을 앞둔 보호아동들에게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체험실에는 매년 최대 180명의 보호아동들이 머물면서 혼자 사는 경험을 쌓는다. 경제·창업 교육, 진로 멘토링인 ‘함께자립’ 등 자립준비 프로그램에 참여한 보호아동은 올 들어서만 800여명에 달한다.

센터 측은 아이들 상황에 맞는 맞춤형 소규모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직원 1명이 담당하는 보호종료아동도 10명을 넘지 않도록 한다. 삼성전자에서도 이에 발맞춰 최근 3개월간 전문 코치 자격증을 가진 임직원 30명이 참여하는 일대일 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박 부장은 “이제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건강하게 자립할 수 있도록 질적인 측면의 지원을 강화해야 할 때”라며 “시범사업 기간이 끝나더라도 국가와 사회가 꾸준히 지원해서 청년들이 자신의 자립이 축복받는 일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멘토가 되어준 삼성 임직원… “기댈 수 있는 어른 생겼어요”

자립준비청년인 손예원(18)양은 올해 대학에 입학했지만 진로가 늘 고민이었다. 가족에게 조언을 얻는 주변 친구들과 달리 손양은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가 마땅치 않았다.

그런 손양에게 기댈 만한 어른이 생겼다. 삼성전자의 임직원 참여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사원부터 부장까지 연차와 다양한 직무의 삼성전자 임직원 30명이 희망디딤돌 경기·충남·강원센터 보호종료아동 30명의 멘토로 활동 중이다. 보호종료아동이 사회에 안정적으로 첫발을 내디딜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인 셈이다.

손양 멘토인 윤혜선(42) 삼성전자 DS(반도체)부문 프로는 멘토로 참여하기로 한 후에도 한참을 망설였다고 했다. 그는 "어설프게 공부한 것으로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도 됐고 혹여나 실수를 할까봐 조심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시험 기간, 축제 기간에도 미루지 않고 찾아오는 청년을 보면서 저도 위로를 받았고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고 다짐하게 됐다"고 말했다.

동물보건복지학을 전공하는 손양에게 윤 프로는 목표를 구체화하고 멘토링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스스로 고민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는 직접적인 조언보다는 지금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진정으로 원하는 삶 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하도록 유도했다.

손양은 그런 윤 프로의 멘토링이 '자신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이라고 했다. 그는 "동물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큰 틀의 목표는 있었지만, 하고 싶은 많은 일 중에 길을 정하고 세부적인 방향을 찾는 일이 어려웠다"며 "멘토 선생님이 자신의 사회생활 경험과 진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의 고민 등을 함께 나눠줘서 대화를 통해 간호와 미용 일을 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꿈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려울 때 손 내밀어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났다. 손양은 "혼자 지내면서 무기력해질 때가 있는데, 선생님이 의욕을 북돋아줘서 힘이 나기도 했다"며 "앞으로도 가끔 서로 안부를 전하고 연락하며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내년부터 전국 모든 센터로 멘토링 프로그램을 확대할 방침이다.

아산=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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