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신고 못해요, 진짜 사라질까봐” 멈춘 유가족의 삶

이태원 참사 한 달, 유가족의 삶
생업 포기한 채 추모공원만 찾아
“시간 지날수록 더 힘들어지네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지난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희생자의 영정사진을 든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태원 참사 24일 만에 처음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유가족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권현구 기자

“지한아, 빠져 나왔어야지.” 지난 24일 경기 고양시 한 추모공원.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故) 이지한씨 유골함 앞에 선 가족들이 이제는 대답할 수 없는 이씨에게 말을 걸며 흐느꼈다. 가족들은 이씨 사진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유리를 매만졌다. 이들은 이씨를 추모공원에 안치한 후 매일 이곳을 찾아 이씨에게 보내는 편지를 방명록에 일기처럼 적고 있다.

이씨는 한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얼굴을 알린 뒤 배우로 활동하다 지난달 29일 이태원에서 변을 당했다. 이씨 아버지(55)와 어머니(54) 그리고 누나는 매일 이씨가 좋아하던 음식을 싸서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다 됐지만, 가족의 시간은 참사 이전에 멈춰 있었다.

이씨가 떠난 후 가족들의 충격과 슬픔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생업도 포기하다시피한 상태다. 이씨 아버지는 “시간이 지나면 슬픔의 강도가 덜해지고 점점 잊을 줄 알았다”며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힘들어진다”고 토로했다. 이씨 어머니는 “지한이 누나가 힘들어하는 걸 보면, 또 한 번 내 억장이 무너진다. 내가 더 슬퍼해야 하는 건지, 다른 가족을 위해서 슬픔을 감춰야 하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며 울었다.

이씨 어머니는 현관문 밖에 발걸음 소리만 들려도 아들이 떠오른다고 했다. 주인 없는 아들 방에는 혹여 냉기가 돌까 하루 종일 보일러를 틀어 두고 있다.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상황이 한 달이 다 돼 간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참사 이후 가족들의 슬픔은 덜어지지 않았지만 이씨가 살았던 흔적들은 하나둘 지워야 했다. 당장 해야 하는 건 사망신고였다. 이씨 어머니는 27일 “한 번 (주민센터에) 갔었지만, 못 할 것 같아서 돌아왔다”며 “사망 신고를 하게 되면 지한이가 세상에서 진짜 사라지는 것 같아 차마 할 수가 없었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한 달 안에 사망신고를 하지 않으면 규정상 과태료를 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이씨 부모는 “그걸 하면 못 살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가 나중에 결혼할 때 주려고 아들 이름으로 부모가 대신 차곡차곡 모았던 청약 통장도 해지했다. 이씨 아버지가 은행에 가 아들의 사망 사실을 알렸더니 은행 직원은 이씨가 매달 모아둔 청년 저축상품도 있다고 알려줬다. 이씨 아버지는 “은행 창구 직원분이 해지를 해주는데, 그분도 저도 정말 많이 울었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故) 박가영씨 어머니 최선미(49)씨도 “나는 지금도 참사 당일에 있다”고 털어놨다. 최씨는 아동학대 위험 가정을 방문해 심리상담을 하는 일을 해왔다. 하지만 참사 이후에는 일을 그만두고 집 밖을 나서지 않고 있다. 참사 이후 한 달 동안 그는 지인과의 연락도 모두 끊었다.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고 스스로를 가뒀다고 했다. 최씨 집 앞에는 교회 사람들이 끼니마다 음식을 놓고 가지만, 마주할 자신이 없어 감사하다는 인사 한 번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씨는 "더는 누구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시계를 보면서 '시간이 왜 이렇게 안 가지. 나는 빨리 늙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남은 세월은 의미가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박씨 장례 이후 슬픔을 삼키던 최씨는 대전에 있는 딸의 자취방을 정리하며 또 한 번 무너졌다. 그는 "가영이 아버지가 용돈으로 보내준 돈을 차곡차곡 모은 70만원이 방에 현금으로 그대로 있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남은 가족들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지만 떠난 이들을 향한 날 선 시선은 유족들을 더욱 가슴 아프게 한다. 최씨는 "'거기 간 사람들의 잘못'이라는 사람들의 말에 삶의 의지가 꺾였다"며 "가영이를 위해서 분노하고 행동하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책임이지만, 지금은 아무런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는 게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지난 24일 뒤늦게 이태원 참사 유가족 모임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또 유가족이 원하면 희생자 명단도 공개할 것이란 입장을 내놨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유가족 의사를 들어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계획을 세워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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