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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원의 메디컬 인사이드] 음주 폐해 불감증 사회


대한민국은 술에 관대한 사회다. 술 권하는 문화가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코로나19 유행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로 달라지나 하는 기대도 잠깐이었다. 혼술이나 홈술 같은 새로운 음주 행태가 등장했고 일상회복이 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으로 되돌아가는 모양새다.

한국인은 술을 생활 그 자체, 자연스러운 문화로 받아들이다 보니 음주 폐해에 무감각해졌다. 절주니 금주니 하는 말은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린다. 흡연 폐해나 금연에 대한 민감도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우리 국민은 술로 인한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정부 기관에서 관련 수치를 내놓아도 신경 안 쓰고 술을 마셔댄다. 그렇게 잠깐의 기쁨 추구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마신 술이 언젠가 자신의 건강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음주 폐해의 실상은 각종 통계로 알 수 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음주자의 월간 폭음률(2013년 OECD 보고서), 간 질환 사망률(2021년 간 질환 백서), 음주 교통사고 사망률(2018년 OECD 보고서) 1위다. 매일 13.9명이 술 때문에 목숨을 잃고 있다(2021년 사망원인 통계). 술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2019년 기준)은 연간 15조원대로 흡연(12조원) 비만(13조원)을 뛰어넘는다. 이처럼 각종 지표에 일찍부터 경고등이 들어왔음에도, 자신에게 직접 닥친 일이 아니니 남의 얘기처럼 듣는다.

알코올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인데, 대다수 국민은 평소 잘 깨닫지 못한다. 술은 구강암 인두암 식도암 간암 대장암 유방암 발생과의 인과성이 과학적으로 밝혀져 있다. 한국민은 유독 발암물질에 민감하다. 몇 년 전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1급 발암물질 라돈 침대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발암물질을 벌컥벌컥 들이마시면서도 이에 대한 자각은 매우 약하다.

이런 허용적 음주 풍토가 뿌리내린 데는 술에 대한 오해도 한몫했다. 한때 적당한 음주나 한두 잔의 술은 괜찮다거나 건강에 도움 된다는 주장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대규모 국제 추적연구를 통해 잘못된 정보임이 규명됐다. WHO도 건강 위해를 일으키지 않는 적정 음주량은 없다고 밝혔다. 우리 국립암센터도 10가지 암예방실천수칙에서 하루 두 잔 이내로 마시도록 한 과거 지침을 바꿔 2016년부터 소량 음주도 피하라고 권고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많지 않다.

TV 드라마·예능프로에 자주 등장하는 음주 미화 장면, 유튜브·SNS에서 규제 없이 이뤄지는 술방(술 마시는 방송), 점점 진화하는 주류 광고 등도 청소년이나 여성의 음주를 조장하는 유해 환경으로 오래전부터 지적됐는데,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음주 폐해 불감증 사회를 만든 데는 미디어의 책임도 비껴갈 수 없다.

국가 음주 폐해 예방 예산은 15년째 연간 14억원에 묶여 있다. 주류회사의 음주 마케팅 비용이 한 해 3000억원에 달하는 것과 비교된다. 한국의 음주 관리 정책 수준은 OECD 30개국 중 22위(2014년)로 하위권이다.

이런 상황에서 음주 폐해 감소·예방을 위한 전사회적 실천운동 전개 차원에서 20개 보건의료 및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한 민간 네트워크가 최근 결성돼 주목된다. 더구나 여기에는 대한의사협회와 응급의학회, 간학회, 신경정신의학회, 예방의학회, 중독정신의학회, 국립암센터 등 그동안 음주 문제에 방관자적 자세를 취했던 의료 전문가 단체들이 대거 참여해 이전과는 다른 기대를 낳는다. 질병 유발 등 음주 폐해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지속해서 발굴하고 효과적인 정책을 제시해 사회 전반에 스며 있는 관대한 음주 문화와 국민 인식을 바꾸는 데 힘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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