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한마당] 가스라이팅 정치

태원준 논설위원


미국 사전 출판사 메리엄웹스터가 올해의 단어로 뽑은 ‘가스라이팅(gaslighting)’은 온라인 사전 검색량이 작년보다 1740%나 폭증했다. 특정 사건이 폭풍 검색을 불렀던 ‘올리가르히’(우크라이나 전쟁)나 ‘오미크론’(코로나)과 달리 1년 내내 상위권을 떠나지 않았다. 1938년 희곡 ‘가스등(gaslight)’에서 비롯된 단어가 80여년 만에 검색 1위에 오르며 일상어로 자리 잡아가는 배경을 출판사는 두 가지로 분석했다.

①의미의 확장. 원래 가스라이팅은 희곡 내용처럼 누군가에게 장기간 거짓을 주입해 사실로 믿게 하는 세뇌를 뜻했다. 속이는 대상은 개인이고, 수법은 은밀한 심리적 지배였다. 하지만 요즘은 가짜뉴스와 음모론을 퍼뜨려 이득을 취하는 행위까지 포괄하는 용어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거 부정 음모론을 공공연히 거론할 때, 미국 언론은 그가 대중을 가스라이팅한다고 표현했다. 개인에서 대중으로 속이는 대상이 확대되고, 심리적 지배에서 가짜뉴스 유포로 수법이 노골화한 것이다.

②거짓말의 새로운 장르. 영어에는 ‘거짓’을 뜻하는 단어가 아주 많다. 중립적 의미일 때는 falsehood나 untruth, 속이려는 의도에 무게를 두면 deceitfulness, 완곡한 거짓이란 뉘앙스를 더하려면 prevarication(핑계)이나 dissemble(가식)을 쓴다. 개인을 속일 때의 거짓말은 lie, 기업 등 조직을 속이는 것은 fraud(사기)라고 한다. 이렇게 풍부한 어휘로도 정확히 표현하기 어려웠던 것은 정치적 거짓말이었다. 큰 계략의 일부로 거짓 정보를 퍼뜨려 대중이 믿게 만듦으로써 정치적 이득을 얻는 행위. ‘선동’이 가까워 보이지만, 딱 들어맞진 않는 그 거짓말을 지칭할 때 가스라이팅이 유용하다고 출판사는 전했다.

한국에도 이런 장르의 거짓말을 개척해가는 정치인이 부쩍 늘었다. 선두주자였던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청담동 술자리’로 실패를 맛보자, 같은 당 김성환 의원이 ‘네옴시티-부산엑스포 빅딜설’을 들고 나왔다. 가스라이팅 정치, 국내에서도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태원준 논설위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