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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김진수 김민재 손흥민이 무슨 죄

강준구 사회2부 차장


2022 카타르월드컵 조별예선 가나전에 앞서 기대와 우려가 엇갈렸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에서 대한민국에 2대 1 패배를 안겼던 우루과이를 맞아 기대 이상 선전을 펼친 뒤 맞은 경기였다. 16강 진출의 결정적 고비였던 이 경기를 앞두고 어떤 이들은 가나를 16강 진출의 제물이라 했고, 다른 이들은 압도적 피지컬과 개인기를 앞세운 난적이라고 했다. 결과는 아쉬운 3대 2 패배. 그래도 조규성의 멋진 추격 헤더 골을 두 번이나 보면서 과거 월드컵 경기와 비교해 격세지감을 느꼈다.

그러나 석패 뒤에 우리는 역적 찾기의 현장을 목도하고 있다. 경기장 양 끝단을 죽어라 뛰어다녔던, 그러다 보니 뒤 공간이 뚫리며 수비 불안을 초래했던 왼쪽 풀백 김진수가 첫 번째 역적 후보에 올랐다. 부상 여파로 수비 라인 조율에 실패했다며 월드클래스 수비수 김민재도 도마 위에 올랐다. 대표팀 주장이자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던 손흥민도 부진 비판에 직면했다.

디테일을 따지자면 선수들 대부분 순간적인 잘못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는 세트피스로 첫 번째 골을 내줄 때 일부러 수비 라인을 내렸는지, 훈련 때마다 오프사이드 트랩이 뚫리는 바람에 그랬는지, 그밖에 다른 이유가 있는지 이면의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한다. 게다가 김진수는 동점골을 어시스트했고, 김민재와 손흥민은 부상을 딛고 투혼을 발휘 중이다.

이런 역적 찾기는 오랜 역사를 지닌 것이어서 황선홍, 하석주, 이동국, 정성룡 등이 과거 월드컵마다 타깃이 돼 전 국민의 욕받이 노릇을 했다. 이젠 그 정도가 심해져 선을 마구 넘는 중인데, 일례로 가나 출신의 쌍둥이 유튜버 계정까지 찾아 눈 뜨고 보기 힘든 욕설 댓글을 쓰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런 이들이 2002 한·일월드컵에서 이탈리아전 골든골을 넣었다고 안정환을 구단에서 쫓아낸 이탈리아 세리에A 페루자 구단주와 어떻게 다른지 의문이다. 분풀이도 정도껏 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 사회는 조직과 시스템이 실패했을 때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개인에 대한 문책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이게 불같은 국민성 탓인지, 압축 성장으로 인한 제도적 미성숙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거대 시스템이나 조직을 바꾸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다 보니 눈앞의 분풀이용 희생양을 찾는 것이 그저 습관이 된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사회적 주목을 받는 재난이나 사고가 발생하면 관계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과도한 비난, 과도한 죄의식, 과도한 고립이 문제일 것이다. 거악에 대한 엄벌도 좋지만 잘못한 만큼만 벌하는, 적정한 단죄에 대해서도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직과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지난한 과정이다. 관계자 모두가 머리를 맞대 합리적 대안을 만들어야지 역적을 만들어 뭇매를 놓는다고 해결되진 않는다. 책임자의 극단적 선택은 사건 진상을 밝히고, 재발 방지책을 수립하는 데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분풀이용 역적 찾기가 이런 결말을 볼 때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 역량의 손실을 보고 있는 셈이다.

콜롬비아 축구 선수 안드레아 에스코바르는 1994년 미국월드컵 조별리그 루마니아전에서 자책골을 넣었다가 귀국 후 총격을 받아 피살됐다. 그런 야만의 시대로 돌아갈 순 없다. 한 경기 질 때마다 쏟아졌던 비판에도 4년간 파울루 벤투 감독을 믿은 결과는 과거 월드컵 무대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성공적인 점유율 축구였다. 강팀을 상대로 대등하게 싸우는 모습이 너무나 낯설어 신기할 지경이었다. 조직과 시스템은 이렇게 장기간에 걸쳐 바꾸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벤투호가 선전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강준구 사회2부 차장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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