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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못참고 500 오링” 월드컵에 단도박자들 ‘흔들’

잘 참다가도 유혹 넘어가기 일쑤
베팅 문자·승부예측 기사도 위험
장벽 낮아 청소년에 여과없이 노출


20대 후반인 A씨는 10대 때 처음 도박 중독의 길에 빠졌다. 지난 5월부터 일절 손을 끊은 그는 최근 집단치료 도중 담당 의사와 동료 환자들에게 “다가오는 월드컵이 두렵다. 버텨낼 힘을 달라”고 호소했다. 4년 전 러시아월드컵 시기 불법 스포츠 도박의 유혹 앞에 무너졌던 기억이 선명하다는 것이다.

지난 21일 막을 올린 2022 카타르월드컵을 마냥 즐기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A씨 같은 ‘단도박자’들이다. 끊겠노라 굳게 다짐했다가도 이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열리면 충동적으로 다시 도박판에 뛰어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도박 중독 치료 목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엔 월드컵 개막을 전후해 관련 게시물이 줄지어 올라왔다. 한 이용자는 “도박을 끊으면서 스포츠를 일절 안 보고 있었는데 한국 경기만큼은 보고 싶더라. 2시간 만에 500만원을 ‘오링(탕진)’했다”고 털어놨다. ‘7개월간 이어 온 단도박이 물거품 됐다’ ‘갖고 있던 돈에 월급까지 모조리 날렸다’ 등의 하소연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을 향한 유혹은 사방에 도사린다. 가입해둔 도박 사이트에서 휴대전화로 베팅을 유도하는 문자 메시지와 전화가 날아들고, 축구 중계를 보는 도중 머릿속으로 ‘상상 베팅’을 하기 일쑤다. 해외 도박사들의 승부 예측을 전하는 기사조차도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해국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1일 “국제적 스포츠 이벤트가 있으면 ‘해외에서 (배당금) 몇 배가 터졌다’는 식의 뉴스들이 나오고, 유튜브 채널 등에서 불법 사이트 배너 광고와 팝업이 따라붙는다”며 “그러면 사람들은 ‘이게 뭐지?’ ‘합법적인 건가?’ 이렇게 생각하고 클릭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불법 도박판은 온라인 위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올해 4월 한국 도박문제 예방치유원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온라인 도박 문제로 ‘헬프라인’을 이용한 사람의 수는 2016~2017년과 2018~2019년 사이 61.66% 증가했다. 2018~2019년과 2020~2021년 사이엔 68.19% 늘어났다. 가뜩이나 성장세였던 온라인 도박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더 가파르게 증가한 모습이다.

불법 도박 사이트 이용은 특별한 배경지식이나 준비 없이도 가능할 만큼 손쉬운 실정이다. 실제 검색 한 번에 유사 사이트, 속칭 ‘놀이터’ 주소가 쏟아져 나왔고, 이름과 입출금 계좌, 휴대전화 번호 등 간단한 개인정보를 기입하자 20분도 안 돼 ‘070’으로 시작하는 번호에서 가입 승인 전화가 걸려왔다.

전문가들은 20, 30대는 물론 10대 청소년조차 불법 도박에 여과 없이 노출돼 있다며 대책 마련을 주문한다. 서둘러 불법 도박 플랫폼에 대한 규제 강화와 중·고교생 대상 교육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노성원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도박을 청소년기에 처음 접하면 증상이 만성화되기도 쉽고, 성인기에도 잘 회복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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