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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마다 뺏고 뺏기는 퇴직연금 쟁탈전

만기 몰려 유치 과열… 혼란 우려
금융당국 “금리경쟁 자제” 경고


금융당국이 각 금융사에 ‘퇴직연금 상품 금리를 과도하게 올리지 말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퇴직연금 상품 만기가 몰려 있는 연말을 맞아 금융권 자금 유치 경쟁이 과열돼 채권 시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말 퇴직연금 상품을 파는 금융사 90곳에 ‘시장 질서를 지켜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12월 퇴직연금 상품 금리를 운용 수익과 비용을 고려해 합리적인 수준에서 정해달라는 요구다.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중 금리가 치솟은 가운데 연말 퇴직연금 시장에서 각 금융사가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지나친 경쟁을 벌이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퇴직연금 상품 금리는 급등한 상황이다. 공시에 따르면 퇴직연금 상품을 파는 은행권은 연 4%대 후반, 보험업계는 5~6%대, 증권업계는 6~8%대 금리를 내세우고 있다. 금융권 전반이 연 2%대 중반 금리를 내세웠던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적게는 두 배, 많게는 네 배 가까이 상승한 것이다.

금감원 행정 지도 이후 일부 금융사는 고금리 퇴직연금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 키움증권은 연 8.25% 금리를 제공하던 이율 보증형 퇴직연금 상품을 지난 2일부터 팔지 않기로 했다.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은 공시 당일인 지난달 29일 금리를 전월 대비 소폭 낮췄다.

퇴직연금 시장에서 나타나는 대규모 자금 이동 현상은 채권 시장 교란의 주범이 될 수 있다. 고금리를 제시한 금융사에 퇴직연금 고객을 뺏긴 금융사는 자산 운용을 위해 매입했던 채권을 팔아 현금화한 뒤 넘겨줘야 한다. 최근 레고랜드와 흥국생명 사태로 불안정해진 채권 시장에 수십조원 규모의 매도 물량이 쏟아지면 경색 현상이 더 심해질 수 있다.

채권 매각에 실패한 일부 금융사는 유동성 위기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중소형 손해보험사나 증권사는 은행이나 생명보험사와 달리 예금을 전용해 쓰기 어렵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을 특별 계정에서 별도 관리하던 손보사는 채권이 안 팔려 돈을 구하지 못하면 지급 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해야 할 수도 있다. 정부가 최근 특별 계정 퇴직연금 차입 규제를 내년 3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완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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