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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 세계 17번째로 살기 좋은 나라

권혜숙 인터뷰 전문기자


서열과 등수에 집착하는 게 부질없다는 건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과 무관한 경기 결과가 속출하는 카타르월드컵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래도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순위표만한 것도 없다. 거의 모든 스포츠 종목이 세계 랭킹을 매기는 것은 물론이고 BTS 덕분에 부쩍 친숙해진 빌보드 차트만 해도 나라별 인기 순위까지 합치면 차트 종류가 100개를 넘어선다. 등수 매기기를 좋아하는 건 동서고금을 떠나 만국 공통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외신이 소개하는 각종 순위표를 즐겨 찾아보는데 그중 하나가 매년 하반기 발표되는 사회발전지수(Social Progress Index)다. 미국의 비영리 기관 소셜 프로그레스 임페러티브가 각국의 ‘삶의 질과 평등’ 수준을 보여주기 위해 기본 욕구(영양·의료 지원, 물·위생, 주거환경, 개인 안전), 웰빙 기반(기초지식 접근성, 정보·통신 접근성, 건강·복지, 환경의 질), 기회(개인 권리, 개인 자유·선택, 포용성, 고등교육 접근성) 등 3개 분야의 12개 항목, 60개 지표를 종합해 순위를 매긴다. 한국은 2014년 28위에서 2019년 23위로 차근차근 올랐고, 2020년 여섯 계단을 뛰어올라 17위가 됐을 땐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보다 더 살기 좋은 나라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며 항목별 점수를 일일이 브리핑하기도 했다.

올해 한국은 조사 대상 169개국 중 17위로 3년째 같은 등수의 성적표를 받았다. 기본 욕구 분야에서 9위, 웰빙 기반에서 17위, 기회에서 22위를 기록했다. 항목별로는 정보·통신 접근성(1위), 고등교육 접근성(3위), 개인 안전(8위)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반면 포용성(35위)과 환경의 질(30위) 등에서 뒤처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톱5는 1위 노르웨이를 필두로 덴마크 핀란드 스위스 아이슬란드 순으로 북유럽 국가들이 대거 차지했다. 일본과 미국이 각각 9위와 25위에 올랐고 중국은 94위였다. 북한은 데이터 부족으로 순위에서 제외됐다. 한국을 앞선 나라는 유럽 일부와 일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뿐이었다. 한국의 삶의 질이 과연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나라를 앞섰느냐 혹은 17위가 만족할 만한 수준이냐에 대해서는 의견차가 있을 수 있지만, 올해 보고서는 그보다 더 의미심장한 진단을 내놓았다. 다가오는 새해가 전 세계적으로 사회 발전이 후퇴하는 원년이 되리라는 것이다.

세계는 꾸준히 진보해 왔지만 2017년 이후 최근 5년간 그 속도가 절반으로 떨어졌고, 지난해 세계발전지수는 불과 0.37점이 오르는 데 그쳤으며, 3분의 1에 해당하는 52개 국가에서 점수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세계를 휩쓸면서 구조적인 약점과 불평등이 두드러진 데다 내년 역시 팬데믹 여파와 기후변화, 경제 위기, 정치적 불안이 위험 요소가 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다.

보고서는 특히 미국과 영국의 하락세에 주목했다. 영국(19위)은 베네수엘라 리비아 시리아와 함께 10년 전보다 삶의 질이 후퇴한 4개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명단에 올랐다. 브렉시트와 긴축 정책 때문에 교육부터 헬스케어, 인권까지 모든 분야에서 뒷걸음질했다는 분석이었다. 주요 7개국(G7) 중 꼴찌인 미국 역시 개인 권리(46위)와 포용성(33위) 등에서 두드러지게 순위가 떨어지는 등 사회적 진보의 엔진이 꺼졌다고 평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순위는 유지하고 있지만 2020년 89.06점(100점 만점)에서 88.42점, 86.47점으로 점수가 조금씩 낮아지는 건 매한가지다. 연말마다 쏟아지는 각종 새해 전망서를 들춰봐도 2023년이 정치 경제 사회 어느 측면으로든 반등의 해가 될 것이라는 예측은 찾기 힘들다.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라는 영화 ‘인터스텔라’의 명대사를 되뇌며 막연한 희망에라도 기대봐야 하는 걸까.

권혜숙 인터뷰 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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