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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의 헌책방] 뒷모습이 참 이쁘네요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책을 좋아하지만 여태 나는 현실과 책의 세계를 확실히 구분해 놓고 살았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날 갑자기 돈키호테처럼 미쳐버릴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책방 일을 시작하고 15년이 흐른 지금 돌아보면 과연 책과 현실이 다른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소설 속에나 있을 법한 희한한 손님을 책방에서 많이 만났다. 놀랍게도 어떤 책 본문 대부분을 암기하는 사람이 있었고, 좋아하는 책 초판만을 수집하러 다니는 손님도 만났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로 현실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캐릭터도 적지 않다. 그런 사람에 순위를 매긴다면 3위 정도에 올릴 만한 이가 바로 ‘등 마니아’ A씨다.

그를 등 마니아라고 부르는 건 말 그대로 이 손님이 등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처음 책방에 왔을 때 나는 그가 약간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몇 번 대화를 해보니 딱히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등을 너무 사랑하고 있을 뿐이다. 한번은 A씨가 책방에 와서 느닷없이 웃옷을 훌렁 벗은 적이 있다. 다행히도 안에는 헬스클럽에서 입는 운동용 민소매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내게 자신의 등을 보여주면서 “저는 등 운동만 합니다”라고 말했다. 말 그대로 그의 등 근육은 아주 멋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왜? 어쩌라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그는 모든 일에 등이 우선이라고 했다. 심지어 지금 타고 다니는 승용차도 앞보다는 등, 그러니까 뒤쪽의 디자인이 맘에 들어서 샀다. 밥을 먹을 때도 후식이 잘 나오는 식당을 일부러 찾아간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도 뒷모습에 끌렸다니까요.” 그러면서 A씨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조덕배가 부른 노래 ‘뒷모습이 참 이쁘네요’를 흥얼거렸다.

왜 이런 얘기를 굳이 책방에 와서 늘어놓는가 하면, 그는 독서도 좋아하는데 서점에서 책을 볼 때면 역시나 뒤부터 살핀다는 거다. “책등에 쓰인 홍보 문구나 추천사 같은 걸 먼저 보고 끌리면 사는 거죠.” 그러면서 책장에 있는 책을 한 권 뽑아 들고 내게 보여줬다. 아까부터 지루한 등 예찬 연설을 듣고 있던 나는 눈치도 없이 “거긴 책등이 아니라 뒤표지인데요”라고 말해버렸다. 우리 둘 다 웃지도 화내지도 못한 채 몇 초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것으로 A씨의 장광설은 일단락됐지만, 그는 이후에도 때때로 우리 책방에 와서 책을 샀고 언제나 뒤표지에 좋은 말이 쓰인 책을 골랐다. 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사람이지만 어쨌든 책을 좋아하는 애서가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책방에 올 때마다 늘 지루한 이야기를 늘어놓아서 나를 곤란하게 만들기는 해도 책을 많이 사줘서 고맙다. 두 손 가득 책을 들고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은 참 이쁘다.

그런 그렇고, 이런 A씨가 기묘한 손님 3위라고 했을 때 2위와 1위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아쉽지만 지면 관계상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궁금한 뒷이야기는 언젠가 다시 풀어놓도록 하겠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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