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서 놀며 영상 제작까지… 플랫폼 ‘신인류’ 초등생들

[알파 세대가 온다] ‘코딩’이 낯설지 않은 아이들

기자의 아바타가 지난 3일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 접속해 인터뷰를 진행할 알파세대의 아바타를 찾고 있다. 제페토 화면 캡처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에 등록된 약 5000만개의 게임은 대부분 전 세계 초등학생이 만들었다. 1980년대 이전 세대에서는 컴퓨터공학 전공생이나 컴퓨터 동아리에서만 다루던 ‘코딩’이 아이들에겐 낯설지 않다. 자라면서 디지털 세상을 경험한 것과 애초에 그런 세상에서 태어난 이들의 삶의 양식은 확연히 다르다. 호주 사회학자 마크 매크린들은 2010~2025년에 태어났거나 태어날 이들을 ‘알파(α) 세대’라고 정의했다. 영어의 마지막 알파벳 ‘Z’세대가 끝난 뒤 찾아온 신인류다. 이들은 기존 사고방식을 완전히 뒤엎어 기성세대를 당황케 한 MZ세대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본능을 구현하고 있다.

요즘 초등학생은 또래와 유대감을 쌓기 위해 메타버스에 접속한다. 미국 16세 어린이의 절반 이상이 로블록스를 하고, 10대의 52%가 현실 친구보다 로블록스에서 친구를 사귀고 소통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 한국에서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메타버스 이용자가 급증했다. 지은(12)이를 만난 것도 지난 3일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다. 하루 3시간 이상 제페토에 머무른다고 했다. 지은이는 제페토에서 만난 친구들과 ‘댄스 크루(모임)’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수시로 정모(정기모임)도 갖는다. 인기 크루는 가입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황명진 고려대 공공사회학과 교수는 “공동체에 소속되길 원하는 인간 욕구를 메타버스 세계에서 충족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은이는 구찌 가방을 메고 있었다. 이곳에서 셀럽(유명인)의 삶을 살고 있다. 제페토에서의 삶은 평범한 초등학생으로 살아가는 현실에도 영향을 미친다. 엄마가 사 준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광고’ ‘#협찬’ ‘#인플루언서’라는 태그를 단다. 일거수일투족을 영상으로 제작해 유튜브나 틱톡에 올린다. 어른들은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쪽에 가깝지만 알파세대는 제작자다. 조회 수와 구독자 수는 셀럽에게 매우 중요하다. 영상을 올릴 때 제목에 ‘리즘’이나 ‘인기급상승동영상’이라고 적는다. ‘리즘’은 ‘유튜브 알고리즘이여, 제 영상을 간택해 달라’는 일종의 염원을 담은 단어다. 지은이는 스스로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돋보이고 싶어 한다. 자신을 알아봐 주고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욕구의 표현이다.


10여년 전 아이들은 방과 후에 학교 앞 문방구로 달려갔다. 연필, 지우개, 책받침 같은 걸 구경했다. 요즘엔 다이소가 그런 역할을 한다. 서울 동교동 다이소 홍대2호점에서 만난 윤주(10)는 책상에 놓을 미니수납장을 고르고 있었다. 사탕이나 젤리 같은 걸 넣어둘 거라고 했다. 지난 2일에는 다이소에서 ‘포카’(연예인 포토카드)를 보관할 콜북(콜렉트북)을 샀다. 알파세대는 다이소에서 1000원이나 2000원 하는 물건을 구입한 뒤 리뷰 영상을 만든다. 이걸 ‘다이소깡’이라고 하는데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아이들이 다이소 제품을 소개한 영상이 수두룩하게 나온다. 윤주는 “다이소 ‘당근칼’은 한때 구하기 힘들 정도였다. 다이소 모바일상품권은 요즘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생일선물”이라고 했다.

알파세대가 열광하는 장난감 중 하나는 ‘쥬얼하트윙폰’이다. 1990년대 인기였던 ‘다마고치’와 비슷하다. 뭔가를 돌보며 느끼는 만족감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다마고치는 기기 1대에 가상 애완동물 한 마리를 키울 수 있지만, 쥬얼하트윙폰은 여러 캐릭터를 키울 수 있다. 캐릭터를 구매하면 생기는 QR코드를 기기에 인식하면 캐릭터가 기기에 담긴다. 코로나19 초기에 적잖은 성인이 QR코드 인증법을 몰라 헤매곤 했는데 알파세대는 이런 디지털 문명에 익숙하다. 알파세대가 처음 태어난 2010년은 애플이 아이패드를 출시하고 인스타그램이 서비스를 시작한 해다.

알파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글자보다 스마트기기의 화면 넘기는 법을 먼저 배웠다. 유튜브에 몰두해 방대한 지식을 빠르게 흡수했다. 호주 매크린들연구소의 애슐리 펠 자문이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알파세대는 왕성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과거 그 어떤 세대보다 아는 것이 많고 조숙하다. 신체적, 사회적, 심리적, 교육적, 심지어 ‘상업적 세련됨’까지도 좀 더 이른 나이에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팬데믹을 경험했다. 가족 여행을 가거나, 교실에서 수업을 듣거나,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뛰어놀지 못했다. 일상을 상실했던 아이들은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으려는 욕구가 크다.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다. 12세의 영국 소년 게이브리얼 클라크는 올해 초 러시아 침공으로 터전을 잃은 우크라이나 어린이를 돕는 온라인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직접 나무그릇을 만들어 경품으로 걸었다. 25만명이 참여했고, 성금 4억원이 모였다.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도 크다. 최근 한 교육업체가 실시한 설문 결과 초등학생 3034명 중 2820명(92.9%)은 환경문제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한 학부모는 “초등학생이 환경에 관심을 갖고, 코로나19 이후 늘어난 일회용품 사용에 심각성을 느낀다는 게 놀랍다”고 했다.

알파세대는 일주일에 약 280만명씩 태어나고 있다. 2025년 22억명에 이를 전망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세대가 몰려오고 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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