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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함께

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


암투병을 마치고 복귀한 지인과 저녁을 먹다 공원이 절실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항암치료 후 며칠씩 서울 외곽의 여성 전용 요양병원에 머물렀는데 환자들이 매일 오전 10시, 오후 3시면 병원 옆 작은 근린공원에 나가 함께 공원을 돈단다. 유일한 병원 밖 출입인지라 나름 꽃단장한 환자들이 공원을 열렬히 걷는단다. 환자로선 걷는 것만이 본인에게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치료이기에 병원 안에서도 낮이면 복도를 밤이면 옥상을 줄지어 걸었고, 걷다 누군가 방귀라도 뀌면 모두 다가가 진심으로 축하해주곤 했단다. 그러고 보니 요양병원을 고를 당시 홍보문구마다 근처 공원 소개가 빠지지 않아 이상했었단 얘기도 덧붙였다.

허름한 서울 외곽의 공원에서 환자들이 줄지어 걷는 모습을 상상하다 엉뚱한 쪽으로 생각이 흘렀다. 며칠 전 한 페친이 올린 동네잔치 사진 때문이다. 한 해 농사를 끝낸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잔치를 벌이는데, 강강수월래마냥 둥글게 서서 함께 노래하고 또 춤추는 모습이었다. 한 해 내내 가뭄과 홍수를 켜켜이 함께 견딘 공동체였기에 가능한 광경에 ‘아! 맞아, 우리도 저랬었지?’라며 잃었던 기억을 되살렸다.

십년 전 즈음 연예, 결혼, 출산을 포기당한 삼포세대가 출현했고, 이젠 싱글경제가 대세다. 혼밥, 혼술은 일상어고 회식은 금기어다. 생각해보면 반려동물, 반려식물도 지독한 외로움이 전제다. 그리고 팬데믹. 12월로 만 3년째. 마스크와 거리두기로 벌어졌던 관계망이 이제야 조금씩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공원과 길에서도 대부분 혼자 걷거나 뛰었는데 간혹 둘이나 셋, 커플이나 동료가 보이더니 작년부터 러닝크루가 생겼다. 밝은 표정으로 함께 뛰는 모습에 덩달아 기운을 얻는다.

지난주부터 작은 빛축제를 서울 목동 파리공원에서 시작했다. ‘함께’를 위한 핑계다. 찬 겨울을, 외로운 삶을, 어려운 경제를, 슬픔과 고통을 함께 헤쳐 나가자며 공원이 드리는 작은 응원이다.

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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