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한강 물, 많이 차요… 부디 마음 돌리세요”

‘한강 수온’은 한강을 상수원으로 활용하는 서울시민의 건강과 한강에 서식하는 수생태계 보존을 위해 매일 측정하는 주요 데이터다. 하지만 한강 온도를 묻는 말은 어느새 한강에 뛰어들고 싶다는 절망감의 또 다른 표현이 됐다. 극단적 선택을 위해 한강 온도를 묻는 이들이 사라지는 날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지난겨울 서울 한강뚝섬공원에 고드름이 얼어 있다. 국민일보DB

“지금 한강 수온 몇 도지?”

온라인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이 말은 사는 게 힘들 때 쓰는,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밈(meme·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된 특정 말이나 사진)이다. 그런데 포털 검색창에 ‘한강 물 온도’를 쳐 보면 실제로 한강 수온을 알려주면서 삶의 용기를 주는 격언을 함께 올려주는 페이지가 나온다. 누가 이런 페이지를 만든 것일까.

닉네임 이블리스(ivLis)를 쓰는 컴퓨터공학도 남모(19)씨가 이 페이지의 개발자다. 남씨는 9일 “중학생 시절 비트코인이 한창 유행하다 하락장이 되자 ‘한강 물 온도 몇 도냐’는 표현이 쓰이는 것을 알게 되면서 페이지를 만들게 됐다”고 했다. 그는 “진짜 온도를 알고 싶기보다는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는 사람이 페이지를 찾아온다고 생각해 재기를 꿈꾸거나 ‘지금까지 했던 것들이 헛된 게 아니다’는 메시지를 담은 명언을 같이 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글귀를 통해 페이지를 찾는 사람들에게 삶의 용기를 북돋워 주고 싶었다는 얘기다. 지금은 관리 문제로 댓글 기능을 삭제했는데, 예전엔 ‘시험 기간에 시험 망쳤는데 위안을 얻고 갑니다’ ‘자살을 생각했는데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등의 이야기가 올라왔다고 전했다.

남씨가 올리는 한강 수온은 노량진에서 측정되는 데이터다. 그는 “‘극단적 선택 암시’가 주식 하락장에서도 많이 언급되지만 페이지를 만들 당시 학생이기도 했고, 공부 스트레스도 크지 않을까 싶어 재수나 공무원 시험 하면 떠오르는 노량진을 우선순위로 했다”고 부연했다. 기계설비 문제 등으로 노량진 데이터가 공개되지 않으면 근처에 있는 탄천의 데이터를 가져온다.

남씨가 활용하고 있는 이 데이터는 바로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물순환정보공개시스템’에 올라오는 자료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물환경연구부가 제공하는 한강 관련 데이터 페이지로, 누구든지 텍스트 파일을 내려받아 원하는 데이터를 추출하고 가공할 수 있다. 한강 물 온도를 재는 일은 무엇 때문에 누가 하는 것일까.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물환경연구부(물환경생태팀) 서광석 주무관은 지난 8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수질오염으로 서울시민이나 한강에 사는 동식물에 대한 중대한 위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한강 수온 등 관련 데이터를 수집한다”고 했다. 그는 현재 지천 및 국가수질측정망 운영 총괄업무와 탄천 및 중랑천 수질측정소를 담당한다.

한강 본류와 지천의 수질 및 수생태계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수온은 물론 용존산소, 부유물질 등 기본적인 항목부터 페놀, 시안 등과 같은 유해물질 함량을 측정한다. 또 물벼룩과 조류와 같은 생물체를 이용해 독성 평가를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측정자료는 수질 오염사고 발생 시 신속한 대응조치를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데 필요하다. 또한 수생태계 조사 연구의 기초자료로 이용된다.

그중에서도 한강 수온을 측정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서 주무관은 “수온은 하천 내에서 일어나는 물질 간의 반응과 용존산소 농도, 플랑크톤 등 미생물의 계절적 발생 특성에 영향을 준다”며 “아울러 기후변화의 직간접적인 지표로도 삼을 수 있다”고 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대기 온도 상승이 수온 상승을 유발해 수생태계의 변화를 초래하고 수생 생물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지속해서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순환정보공개시스템에서는 노량진, 선유, 탄천, 중랑천, 안양천 등 총 5곳에서 한강 수질을 측정한다. 서울시는 한강 중류 구역을 대표할 수 있는 지점 중 과거 선유도정수장과 노량진취수장이 있었던 선유도(1974년)와 노량진(1977년)을 선정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또 한강으로 유입돼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요 지천 가운데 적정 유량을 보유하는 탄천과 중랑천, 안양천에 수질측정소를 설치해 상시 운영 중이다.

서 주무관은 “한강은 중요한 상수원이자 시민의 친수활동공간이며 많은 수생 생물의 서식처”라며 “사람과 생태계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질오염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수질을 상시 감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렇듯 한강 수온은 인간과 생태계 전반에 중요한 지표지만 언제부터인가 한강에 뛰어들고 싶을 때 묻는 말로 변해버렸다. 남씨는 “사실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밈은 수명이 짧은데 여전히 하루에 3000~4000명이 이 페이지를 방문한다”고 했다. 매일매일 이 온도를 체크하러 들어오는 사람이 이만큼 있다는 건 어디에선가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인 이웃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남씨는 “언젠가는 이 페이지에 들어오는 사람이 없어져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을 항상 갖고 있다”고 했다.

이 페이지 상단에 걸려 있는 문장이 있다. “항상 들어와 보긴 하는데, 인생은 살 만한 거 같아요.” 페이지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남씨가 건네는 자그마한 위로다. 2022년 12월 겨울, 한강 수온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온도는 늘 상대적이다. 높은 온도를 알기에 낮은 온도를 체감한다. 한강도, 삶도 그렇다.

서지영 이지민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