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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석운 칼럼] 국회에 발목잡힌 정부예산안, 허점도 많다


부처별 중복 투자 많고 성과 미흡, 불용 예산 수두룩
예타 탈락한 뒤 꼼수 편성도
국회는 헌법과 법률 지켜야
‘小소위’든 ‘3+3협의체’든 편법인 건 마찬가지
상임위 예비심사 시한 정하고
예결위 이후 조정된 예산은 항목과 이유 상세히 공개해야

윤석열정부의 첫 예산안이 국회에서 발목이 잡혔다. 정기국회 폐회를 이틀 남겨둔 7일까지도 예산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미 헌법이 정한 예산안 처리 시한(12월 2일)은 벌써 지났다. 헌법(54조)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국회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예산안 처리 지연은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의 발목잡기다.

그러나 국회 심사 과정을 들여다보면 정부 예산안도 문제 투성이다. 여야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쟁점이 된 사업 외에도 예산안의 전제가 현실과 맞지 않거나 중복 투자, 꼼수 편성 등 허점이 많다. 정부가 추진하지 않기로 발표한 사업도 예산안에는 그대로 들어 있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전년도 본 예산 대비 5.2% 증가한 639조원으로 편성해 10월 2일 국회에 제출했다. 이는 올해와 내년 경상성장률(실질성장률+물가상승률)이 각각 5.2%, 4.5% 성장할 것이라는 전제로 만든 예산안이다. 그런데 각종 지표가 모두 지난 6월에 나온 것들이다. 하반기 들어 급격히 나빠진 경제가 내년에는 1%대 성장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 예산안의 전제가 틀어질 가능성이 많다.

정부가 추진을 철회하거나 유예한 사업이 예산안에는 그대로 남아 있다. 금융투자소득세는 정부가 과세를 유예하기로 했는데 내년 1월부터 시행하는 걸 전제로 예산이 잡혀 있다.

부처별 중복 투자나 유사한 사업도 적지 않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반도체설계구현인재양성 사업(58억원)은 교육부의 반도체특성화대학 지원 사업(480억원)과 유사해서 이중 지원 가능성이 높다. 고용노동부의 고령자인재은행 사업(35억원)은 보건복지부가 1조4180억원을 투입하는 노인일자리사업과 겹친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분류한 유사 중복 사업은 모두 11건이다.과기부, 농림부가 2건씩이고, 문화재청, 고용부, 금융위, 기재부, 감사원, 법무부, 국가인권위가 1건 씩이다.

국비 500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신규 사업은 반드시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거쳐야 하는데 예타에서 탈락하자 사업규모를 줄여서 우회 편성한 사례도 있었다. 과기정통부와 산업부, 해수부, 농림부 등 8개 부처가 공동으로 추진하던 ‘국가마이크로바이옴 이니셔티브’ 사업은 예타를 통과하지 못하자 과기부, 복지부, 질병청 등이 사업을 쪼개서 추진하는 꼼수를 부렸다. 과기정통부는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차세대 치료원천기술개발’이란 이름을, 복지부는 질병관리청과 공동으로 ‘병원 기반 인간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개발’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들 사업비를 모두 합치면 500억원을 초과한다.

교육부는 대학들 위에 군림하던 고등교육실을 폐지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했지만 예산안은 여전히 대학들의 경쟁을 유도하고 입시에 개입하는 정책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대학들 사이에 유치 경쟁이 가장 심한 BK21 사업은 내년에도 4166억원이 편성돼 있다. 대입전형 자율역량 기반조성이란 명목으로 잡혀 있는 예산(603억원)은 교육부가 대학들의 입시에 개입하는 수단이다.

국회 심사 과정도 문제가 적지 않다. 상임위의 예비심사와 예결위의 심사가 사실상 구분되지 않아 중복 심사라는 비판이 많다. 예결위 심사는 11월 30일까지 마치도록 돼 있는데 11월 중순이 지나도록 예비심사 보고서를 예결위에 넘기지 않은 상임위가 많았다.

가장 많은 비판은 예결위 활동이 종료되는 11월 30일 이후 여야가 ‘소(小)소위’ 등 법적 근거가 없는 기구를 만들어 짬짜미 심사를 하는 경우에 쏟아진다. 여야는 올해도 소소위를 가동하려다가 비난 여론이 일자 ‘2+2 협의체’를 만들었다. 예결위의 여야 간사와 양당 정책위의장 간 협상 테이블이다. 6일부터는 여야 원내대표까지 가세한 ‘3+3 협의체’로 확대했다. 정치적 타결을 위해 대표성을 강화한 것이지만 법적 근거가 없기는 매 한 가지다.

예산안 심사는 공개가 원칙이다. 국회가 속기록과 동영상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리는 이유다. 그런데 2+2 협의체와 3+3 협의체는 속기록도 남기지 않고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다. 협상의 효율성을 위한 것이라지만 국민 세금이 쓰이는 예산안 심사를 비공개로 하는 건 헌법과 법률 위반이다. 협상이 불가피하더라도 합의가 끝나면 즉시 심사 과정을 공개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제때 처리해야 한다. 헌법도 지키지 않는 국회의원들은 국민을 대변할 자격이 없다.

전석운 논설위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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