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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강창욱 이슈&탐사팀장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다. 이 이야기에서 고양이는 조용히 늘 곁에 있어서 튀지 않지만 자신에게 더없이 소중한 존재를 의미한다. 그래서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이라는 가정은 ‘세상에서 소중한 존재가 사라진다면’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세상은 누구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고양이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고양이는 생존력과 번식력이 어떤 동물보다 강한 종이다. 그보다는 고양이에게 사냥당해 사라지는 동물을 걱정하는 게 먼저다. 이슈&탐사팀이 지난달 연재한 ‘두 얼굴의 고양이’ 시리즈는 방치된 고양이가 생태계에 일으키는 문제와 해법을 살펴보는 기사였다. 보도 이후 “사람이 더 파괴적이다”라는 지적이 있었다.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고양이 때문에 일어나는 어떤 종의 위기가 대수롭지 않게 여겨져서는 안 된다. 종의 문제는 귀엽다고 보호하고, 안 귀엽다고 나몰라라 할 일이 아니다.

시리즈 첫 회에서 간단히 언급한 뉴질랜드 스티븐스섬 사례를 조금 자세히 보자. 스티븐스섬은 뉴질랜드 남섬 최북단과 거리가 2㎞ 정도로 가깝게 붙어있는 작은 섬이다. 워낙 물길이 험해 1890년대 초까지 제대로 발을 들인 사람이 없는 땅이었다. 해양 당국은 이 섬 인근을 지나던 배들이 잇따라 난파해 수백명이 목숨을 잃자 등대를 놓기로 한다. 1894년 1월 등대지기 데이비드 라이얼과 그 가족을 포함한 17명이 이주하면서 사람이 처음 살기 시작했다. ‘티블스’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암컷 고양이는 그들과 함께 들어온 이 섬 최초의 고양이였다.

티블스는 보호자가 있는 집고양이였지만 집밖을 자유롭게 나다니는 ‘외출냥이’이기도 했다. 그렇게 섬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시로 작은 새들을 물어왔다. 그중 희귀종을 알아본 건 라이얼이었다. 그는 독학으로 자연사와 박물학을 습득한 ‘새덕후’였다. 이 섬에서 새를 관찰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그의 낙이었다. 낯선 새는 올리브색에 가슴은 창백한 편이었고 눈 위에는 화장한 듯 하얀 줄무늬가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날개가 유난히 짧고 발이 컸다. 그동안 보고된 적 없는 새라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는 고양이에 사냥당해 거의 전멸한 뒤였다. 최초 보고자 라이얼의 이름을 따 ‘라이얼의 굴뚝새’로도 불리는 이 새의 자취는 현재 9개국 박물관에 보존된 15개 표본이 전부다. 모두 티블스가 잡아온 새 중 온전한 사체를 라이얼이 박제한 것들이다. 심장이 뛰는 ‘라이얼의 굴뚝새’는 이제 없다.

이 새는 진화의 산증인이었다. 스티븐스섬에서는 먹을거리가 풍부하고 포식자가 없는 탓에 힘들여 날 필요가 없었다. 먼옛날 어쩌다 이 섬까지 날아온 새는 그 풍요와 평화로움에 점점 땅에 눌러살게 됐고 그러다 서서히 날개가 퇴화했다. 변화는 수백만년에 걸쳐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오랜 세월 대를 이어온 새가 고양이의 등장과 함께 세상에서 사라지기까지는 1년여밖에 걸리지 않았다. 티블스는 이 섬의 첫 포유류 포식자였고 입도 당시 임신 중이었다고 한다. 자손들은 빠르게 번식하며 모두 야생고양이가 됐고 새 사냥에 가담했다. 라이얼은 “(고양이가) 모든 새들 사이에 슬픈 대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탄했다. 티블스는 그가 데려온 고양이였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최대 일간 더프레스는 1895년 3월 16일자 사설에서 굴뚝새의 멸종을 선언하며 이를 ‘기록적 몰살’로 평가했다.

티블스의 자손 섬냥이들은 계속 번식했다. 1899년 새로 부임한 등대지기는 섬을 이전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10개월간 100마리 넘는 고양이를 사살했다. 그러고도 섬에서 고양이가 사라지기까지 26년이 걸렸다. 라이얼은 이미 부임 2년 만인 1896년 1월 스티븐스섬을 떠나고 없었다. 그는 그해 6월 승진하면서 북섬 인근 쿠비어섬으로 근무지를 옮겼는데 이곳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쥐를 잡으려고 들여온 고양이들이 살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고양이는 골칫거리가 돼가고 있었다. 그들은 1970년대 초까지 북섬새들백, 톰티트, 투이, 붉은이마앵무새 같은 새들을 멸종시켰다. 당국은 섬 복원 조치의 일환으로 1964년부터 야생고양이 배회를 금지했다. 1970년부터는 집고양이도 키울 수 없도록 했다. 이 섬에서 고양이가 완전히 사라진 건 그로부터도 20여년 뒤인 1993년 9월로 기록돼 있다.

날개까지 버리고 수백만년을 견뎌온 새가 멸종하고, 사람이 원해서 들여온 고양이 일족도 몰살당한 스티븐스섬이나 쿠비어섬 사례는 비극이다. 누구는 고양이를 탓하고 누구는 사람을 원망할 테지만 근본 원인을 꼽자면 고양이(의 습성)에 대한 몰이해였을 것이다. 몰라서 일어난 일을 어쩌겠는가. 적적함을 해소하려고 외딴섬으로 고양이를 데려가 자유롭게 외출하도록 한 라이얼도 생각해보면 애묘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알면서도 손을 놓고 있으니 고양이가 일으키는 문제는 ‘사람의 문제’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고양이를 맹목적으로 사랑해서 생기는 문제는 생각보다 크다. 이 맹목적 사랑이 문제 해결에 책임이 있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손발을 묶고 있다. 고양이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아는 전문가들도 극성 ‘캣맘’에 시달리는 게 무서워서 나서지 않는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게 잘못이 아니라 고양이 사랑에 매몰돼 다른 모든 문제를 도외시하는 게 위험하다는 이야기다.

영화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에서 고양이는 ‘조용히 늘 곁에 있어서 튀지 않는 존재’이면서 ‘소중한 존재’를 은유한다. 이 도식에서 잠시 고양이를 가리자(이 영화에는 고양이 말고도 전화, 영화, 시계가 그런 대상으로 등장한다). 그러면 ‘조용히 늘 곁에 있어서 튀지 않는 존재’가 세상에서 없어지면 안 될 ‘소중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 평소엔 그 가치를 알지 못했을 뿐이다. 팬덤에 가까운 고양이 사랑의 이면에서 고양이에 사냥당해 사라져가는 다른 동물들도 지금은 모를 뿐 똑같이 소중한 존재일 것이다. 그런 동물들이 사라진 세상은 고양이가 사라진 세상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강창욱 이슈&탐사팀장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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