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극단 논리에 갇힌 한국 정치… 변화의 첫 단추는 개헌”

전문가들, 1987년 개헌 이후 36년 ‘달라진 현실’ 반영 목소리


지난 한 해 동안 정치권은 극심한 진영 갈등을 겪었다. 양극단의 지지층도 끊임없이 반목했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여야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박탈)부터 예산안 처리까지 사사건건 충돌했다. 영수회담은 불발됐고, 검찰의 야권 수사에 진영 간 골은 더 깊어졌다.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단순히 현 정권과 야당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현 정치체제의 구조적 문제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이는 결국 1987년 9차 개헌 이후 유지되고 있는 헌법을 손질해 지난 36년 동안 크게 바뀐 정치 현실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로 이어진다. 또 양당제 폐해 극복을 위한 선거제 개편 역시 2023년 한 해 동안 정치권이 논의해야 할 주제로 꼽힌다.

사회 변화 반영 못하는 ‘87체제’ 헌법

최근 개헌 논의 필요성을 가장 강조하고 있는 인물은 김진표 국회의장이다. 김 의장은 1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987년 9차 개헌 이후 36년간 우리 사회 변화상을 현행 헌법은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각오로 21대 국회에서 개헌을 매듭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이 가장 바라는 개헌이 무엇인지 파악한 후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것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개헌은 타협의 예술”이라고 강조했다.

김 의장은 지난해 10월 취임 100일 특별대담에서 ‘4년 중임 대통령제’를 개헌 방향으로 제시한 바 있다. 올해 국회에 개헌특위를 구성해 본격적인 논의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개헌을 통한 정치구조 개편의 여러 방향을 놓고 적합성을 따져보는 중이다.

양승함 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대통령 중임제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양 전 교수는 “현재 대통령 단임제하에서는 국민이 선거를 통해 전임 대통령에 대해서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며 “한 번 하고 끝나니까 민주적인 책임을 지지 않게 되고, 무책임하게 도망만 가고 만다”고 지적했다.

문재인정부 때 제시됐던 개헌안도 대통령 중임제로의 전환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당시 논의에 참여했던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통령 임기 5년으로는 장기적인 국가 비전을 추진할 수가 없다”며 “단임제는 원래 독재정권의 권력 연장을 막기 위해 채택한 것인데, 이제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대통령 중임제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임제를 한다고 해서 현재의 제왕적 대통령제가 깨지는 게 아니다”며 “내각제로의 근본적인 개편을 고민해볼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의회가 선출한 총리와 내각이 실질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도록 해서 대통령이 가진 막강한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민 민주당 의원도 “가능하면 내각제로 가야 한다”면서 “의회에 권한을 더 많이 준다는 측면보다는 TV 리모컨을 시청자가 갖고 있듯이 정치 소비자인 유권자에게 정치 세력을 쉽게 교체할 수 있는 권한을 주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거제 개편도 함께 논의돼야

전문가들은 개헌 논의 시 선거·정당제도 개편도 반드시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개헌을 논의하려면 권력구조 개편과 함께 선거제도, 정당제도까지 각 제도의 조화성을 놓고 논의해야 한다”며 “지금 나오는 논의들은 정치공학적 측면에서 권력구조 개편에만 집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정태호 의원은 “지금의 국회 의석수는 국민 여론을 그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 지지율을 합하면 겨우 70~80%인데, 의석은 양당이 거의 90% 이상을 가져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현재 정치권에서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는 것은 총선의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는 안이다. 예를 들면 의원 1명을 뽑는 지역구 4개를 합친 뒤 하나의 권역에서 4명의 의원을 뽑는 식이다. 사표를 막으면서 다양한 정당의 출현이 가능해져 지금의 양당제를 깰 수 있는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논의들이 권력구조 개편 논의와 맞물리지 않으면 부작용만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법률가 출신의 국민의힘 재선의원은 “연정이 자유로운 내각제에선 다양한 소수정당이 연대를 통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어 내각제는 중대선거구제와 상성이 맞다”면서 “하지만 연정이 어려운 대통령제하에선 그런 다양성이 의미를 갖기 어려워 오히려 소선구제와 합이 잘 맞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정치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민주당 한 재선의원은 “지금처럼 양당이 영남과 호남에서 막강한 기득권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면 오히려 양대 기득권 정당의 나눠 먹기가 될 수 있다”며 “현재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독일식 비례대표제처럼 확대해 소수 의견을 반영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민지 안규영 구승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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