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임신부 돕는 ‘찾산 버스’… “덕분에 셋째 첫 모습 봤어요”

[인구가 미래다!] ‘A등급 분만취약지’ 경북 봉화
산부인과 없는 곳 매월 두 번 방문
병원 못잖은 진료·검진 서비스
새 생명 찾아오면 온 동네 들썩

임신 11주차인 오예랑씨(오른쪽 첫 번째)와 가족들이 지난 20일 경북 봉화군보건소 앞의 ‘찾아가는 산부인과’(찾산)에서 초음파 검사 뒤 격려하고 있다. 봉화=이한형 기자

경북 봉화군보건소 앞 ‘찾아가는 산부인과’(찾산)라고 적힌 대형버스 안으로 두 아이의 손을 꼭 잡은 부부가 들어섰다. 임신 11주차인 오예랑(31)씨와 남편 신현성(33)씨, 두 자녀 예준(5)이와 예봄(3)이었다. 네 사람은 한파 속에서도 오씨 뱃속의 단비(태명)를 보러 차로 10분 거리의 찾산을 찾았다.

이들이 방문한 버스는 외양은 일반 버스 같지만, 안에는 산부인과 병원 못지않게 다양한 진료 장비들이 설치돼 있다. 말 그대로 ‘움직이는 병원’이다. 버스에 오르면 혈압측정기와 흉부 엑스레이 기계가 눈에 들어온다. 안쪽에는 산부인과 내진대와 피검사 기구들이, 버스 뒤편에는 침대와 입체 초음파 검사 기구가 있다. 보건복지부와 경북도 예산으로 운영되는 찾산은 산부인과가 없는 시골 지역을 매달 두 번 찾아간다. 오씨는 지난 20일 찾산에서 산전 검사와 기형아검사를 진행했다. 산전 검사는 임신 초기 산모의 전반적인 몸 상태를 혈액과 소변검사 등을 통해 알아보는 검사다.

입구에서 체중을 잰 후 오씨는 가족들과 함께 초음파 검사실로 이동했다. 유봉재(56) 진료과장은 몸 상태 등을 문진한 후 초음파 검사를 시작했다. 오씨가 누운 침대 옆 의자에 앉은 신씨는 두 아이를 안은 채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두리번거리며 버스를 돌아다니려는 예준이를 붙잡고 신씨는 “같이 동생을 보자”고 말했다.

오씨의 배에 초음파 검사기를 대자 모니터에 조그마한 태아의 모습이 나타났다. 오씨는 화면을 보며 “아이가 정말 많이 컸다”며 감격해 했다. 예준이는 “왜 이렇게 잘 움직여?”라며 연신 신기해 했다. 남편 신씨는 “단비가 많이 움직이네”라며 호응해 줬다. 10여분간 이어진 검사 동안 유 과장은 틈틈이 태아의 영상 모습을 캡처했다. 간호사들은 이를 인쇄해 산모 수첩에 붙였다.

오씨 부부는 5년 전 봉화로 귀촌했다. 도시보다 불편한 점들은 종종 있었지만, 둘째를 임신한 후부터는 무엇보다 진료 걱정이 앞섰다. 인근 마을에 산부인과가 없어 임신한 몸으로 차를 타고 왕복 2시간가량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오씨는 “분만은 도시에 나가야 하지만, 검사 대부분을 가까이에서 받을 수 있어 좋다”며 “오늘은 예준이와 예봄이에게 셋째의 첫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웃었다.

지난해 찾산이 방문하는 마지막 날이었던 이날 14명의 임신부와 가임·비가임 여성이 진료를 받았다. 봉화에서 36년째 사는 이순희(61)씨는 “이 지역 사람들에겐 임신부를 보는 것도 반갑고 신기한 일”이라고 말했다.

출산 ‘신기한 일’ 된 봉화

경북 봉화는 ‘A등급 분만취약지’이자 초고령화 도시로 꼽힌다. A등급 분만취약지는 1시간 내 이동 가능한 분만 의료기관 이용률이 30% 미만이면서 1시간 내 분만 가능한 의료기관에 접근할 수 없는 인구 비율이 30% 이상인 지역을 뜻한다. 봉화에는 산부인과도 없고, 소아청소년과도 없다. 동시에 65세 이상 인구가 지난 11월 기준 39.6%에 달했다. 2022년 찾산을 찾은 사람은 369명으로, 전년(403명)보다 10%가량 줄었다. 아이를 갖는 젊은 세대가 줄고 있다는 뜻이다.

지역 여성들이 검진을 받기 위해 찾산에 오르는 모습. 대형버스 안에 각종 진료 장비를 갖춘 찾산은 산부인과가 없는 지역을 매달 두 번 찾아간다. 봉화에서는 2022년 369명이 검진을 받았다. 봉화=이한형 기자

의료 서비스가 없어 임신·출산을 망설이는 이들이 없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찾산이 시작됐다. 2008년 경남에서 처음 시행해 이듬해부터 복지부가 사업을 전국으로 확산했다. 경북의 경우 안동의료원에 위탁해 봉화·영양·군위·고령·성주·청송 등 산부인과가 없는 6개 군을 찾아간다.

봉화에서 임신부나 갓난아이를 보는 건 ‘신기한 일’이 된 지 오래다. 한 주민은 “아이는커녕 젊은 사람을 보기도 쉽지 않다”며 “동네에서는 최근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기억이 없다. 10년 전만 해도 다문화 여성들이 아이를 많이 낳았는데 요즘엔 그런 가정도 보기 어려워졌다”고 아쉬워했다.

소중한 새 생명 반기는 주민들

새 생명이 찾아오면 동네가 들썩들썩해진다. 둘째 아이를 임신한 장혜민(36)씨는 “2021년 1월 첫째를 낳았는데 봉화의 한 어르신이 ‘20년 만에 갓난아기를 봤다’고 좋아하셨다”며 “마트에 아이를 데리고 가면 처음 보는 어르신이 아이를 예뻐하며 빵을 사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미소를 하는 남편을 따라 7년 전 봉화에 온 박정은(36)씨는 이달 셋째 출산을 앞둔 막달 임신부다. 박씨는 “첫째가 7살인데, 또래가 둘째밖에 없다”며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면 어르신들이 선물과 아기용품을 사주기도 한다. 특히 셋째까지 가졌다는 소식에는 식구가 임신한 것처럼 몸 상태를 걱정해줬다”고 전했다.

그는 태반유착이 있어 출산은 서울의 병원에서 하기로 했다. 예정일에 맞춰 미리 상경할 계획이지만, 혹시라도 그보다 일찍 양수가 터지는 등 변수가 있을까 걱정이다. 박씨는 “양수가 터지면 1시간 이상 차를 타고 나가야만 병원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11년 전부터 찾산에서 진료를 봐온 유 과장은 “버스에서 진료를 받던 산모가 ‘건강하게 아이를 낳았다’며 인사하러 오기도 한다. 건강한 출산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봉화=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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