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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인권과 돼지 바비큐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오래전 카투사로 군 복무를 할 때 일이다. 우리 부대에서는 한국군과 미국군 중 상병 미만 사병 2명이 한방을 썼다. 카투사의 영어 회화 능력을 향상시키고 미군의 원활한 한국 생활 적응을 위한 관행이었다.

이제 막 자대 배치를 받은 한국군 신병이 난생처음 미군 선임과 함께 방을 쓰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러그는 물론 침대에서 신발을 신고 생활하는 것부터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부드럽고 포근한 잠자리 대신 꺼슬꺼슬 모래가 밟히는 잠자리라니. 불편했지만 미군 방장의 라이프스타일이니 따를 수밖에. 먹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카투사들은 1주일에 한 번 저녁에 모여 ‘라면 파티’를 열고 전우애를 다졌는데, 룸메이트 미군은 김치 냄새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양치질하고 옷을 털어도 냄새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으니 한동안 김치를 눈앞에 두고 라면만 먹어야 했다. 그래도 어쩌랴. 미군 선임과 사이좋게 지내려면 당연히 따라야 할 일이라고 여겼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내가 방장이 되고 막 신병 교육을 마친 미군 이병을 룸메이트로 맞았을 때는 정반대 상황이 됐다. 우선 먼지의 발원지인 러그부터 돌돌 말아 한편으로 치웠다. 신발은 문 안에 벗어두고 슬리퍼로 갈아 신기로 했고, 진공청소기를 돌리는 대신 걸레질을 했다. 방은 이제 작은 한국령이 됐으니 음식 문화도 바꿨다. 삼겹살과 마늘을 잔뜩 넣은 쌈을 먹고 와도 방 출입은 얼마든지 오케이. 그 덕분인지 한식은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깡촌 출신 미군 이병은 라면 파티에 자신을 초대해 달라고 조를 정도로 K푸드의 열성 팬이 됐다.

얼마 전 대구 대현동 주민들의 ‘통돼지 바비큐 연말 큰잔치’가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서 논란이 됐다. 이슬람 사원 건축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경북대 근처 사원 건립 공사장 앞에서 50㎏짜리 돼지를 통째로 숯불에 구웠다. 말이 주민 잔치이지 사원 건립을 막으려는 극단적인 이벤트임에 분명했다.

무슬림은 돼지고기를 더럽다며 먹고 만지는 것을 금지하는데 주민들은 그걸 굽고 무슬림에게 폭언을 퍼부었다. ‘무슬림은 살인자’라는 글귀가 여기저기 내걸렸고, 누군가는 공사장 앞에 돼지머리와 족발을 가져다 놓았다. 아니나 다를까. 대현동 주민들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몰상식하고 비이성적인 주민들이 무슬림의 인권을 짓밟았다’거나 ‘한국인이 무슬림을 겨냥해 바비큐 파티가 아닌 혐오 파티를 벌였다’는 험악한 의견들이었다.

반면 주민들 편에 선 네티즌도 의외로 많았다. 서민 주택 10여 가구와 다닥다닥 붙은 곳에 이슬람 사원이 들어서면 원주민들의 피해가 불 보듯 뻔하다는 주장이다. 사원이 들어서면 평일에는 새벽부터 밤까지 5번, 일요일에는 하루 종일 예배가 이어져 고통받게 될 거라는 주민들의 호소에 공감하는 사람들이다. 더 나아가 무슬림이 많아지면 사원 근처에선 한국인들조차 삼겹살을 굽지 못하게 되고, 히잡을 쓰지 않은 한국 여성들은 눈치를 볼지도 모른다는 댓글에는 좋아요가 수천 개 붙었다.

물론 노골적인 돼지 바비큐 공격과 편견 섞인 문구를 적은 플래카드는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타국 선임의 생활방식을 존중하며 슬기로운 부대 생활을 경험한 나로서는 대현동 주민의 아우성에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카타르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축구선수단이 그들의 문화를 존중해 돼지고기를 먹지 않듯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우리의 생활을 존중하는 게 우선이다. 이참에 이슬람 사원은 주민 거주지와 동떨어진 곳에 짓자는 식의 법과 제도적 장치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삼겹살을 최고 한식 중 하나로 여기는 한국에서 돼지 바비큐만으로 인권을 짓밟았다는 비난을 사는 건 억울하지 않은가.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kitt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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