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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서 밀리면 어쩔꼬” 난쏘공, 중림동 마지막 세입자들

故 조세희 작품의 도시빈민 주무대
반세기 지났지만 여전히 힘겨운 삶
처마 맞댄 무허가 판잣집 옹기종기

서울 중구 중림동 호박마을 주민 양이자씨가 27일 늦은 밤 마을 골목을 내려가고 있다. 그는 호박마을에 남아 있는 마지막 주민 중 한 명이다.

도시 빈민 가족이 재개발에 달동네에서도 밀려나며 겪는 고난을 그린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배경이었던 서울 중구 중림동에서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철거를 앞둔 도시 하층민이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28일 찾은 중림동 호박마을은 치우지 않은 눈이 그대로 얼어붙어 바닥 곳곳이 얼음으로 덮여 있었다. 이곳은 중림종합사회복지관 맞은편 언덕에 자리 잡은 중림동 일대의 마지막 달동네다. 리어카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의 벽을 따라 적힌 ‘철거’라는 빨간색 글자가 위압적이었다. 사람이 떠난 대문 앞에는 몇 년씩 묵어 색이 바랜 쓰레기도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상경한 도시 빈민들이 몰려들어 달동네를 이뤘던 중림동은 지난 25일 타계한 조세희 작가의 1978년 작품 ‘난쏘공’의 무대가 됐다고 알려진 동네다. 소설에 등장하는 낙원구 행복동의 모티브가 바로 이곳이다.

소설이 출간된 지 44년이 흐른 2022년에도 이곳엔 여전히 ‘난장이’들이 살아가고 있다. 언덕 꼭대기의 판잣집에 세를 들어 사는 양이자(76)씨는 지난해 2월 집주인에게 퇴거 요청을 받았다. 지난 7월에 합의를 봐서 1년이라는 말미를 일단 약속받았지만 기한 내에 양씨가 새 집을 구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다. 그는 “50년 넘게 이 동네만 빙빙 돌아다니면서 살았는데, 이젠 여기서도 지금 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집이 없다”며 “내년 7월에 정말 나가라고 하면 그때는 어떻게 될지 정말 모르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 근방에서 인생 대부분을 살아온 양씨지만 사는 집이 양씨 자신의 소유였던 적은 없었다. 전 남편이 오랜 투병 생활을 하면서 좀처럼 목돈이 모이지 않았던 탓이라고 했다. 현재의 집으로 이사를 오기 직전에 살았던 곳도 지금은 헐려 없어진 호박마을 초입의 판잣집이었다. 2015년 “나가 달라”는 통보를 받은 양씨가 어떻게든 주변에 머물고 싶어 찾아낸 집이 바로 지금 사는 언덕 위의 판잣집이다.

양씨는 “집주인이 진작에 세 놓는 걸 중단해서 전기도 수도도 끊어져 있던 집이었다”고 계약 당시를 떠올렸다. 당시 그는 집주인에게 1000만원을 일시에 지급하고 빈집을 수리해서 둥지를 틀었다. 직접 손을 본 곳이 많아 그런지 집의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겨울엔 온수가 나오지 않아 씻기가 어렵고, 여름엔 지붕 이음새가 헐거워 비가 샌다.

양씨는 “집이 변변치 않아 미안하다. 나라고 이 집이 좋아서 버티는 건 아니다”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어 “이사 비용과 수리비, 옮겨 갈 집만 있으면 얼마든 나갈 수 있는데…”라고 낮게 읊조렸다.

무성하게 우거진 호박 넝쿨 때문에 호박마을이란 이름이 붙었던 이곳 무허가 판자촌에는 한때 50여가구가 자리 잡고 살았다. 그러나 현재는 ‘마포로5구역 제10·11지구 도시환경 정비사업’이 궤도에 오르면서 서너 가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빈집’이 됐다. 이르면 내년 안에 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된다.

왼쪽 팔다리가 불편한 문영채(88)씨도 이곳에 남은 세입자다. 그는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경사진 골목을 힘겹게 내려가고 있었다. 문씨는 “노령연금이 통장에 들어와서 그 돈도 찾고, 오랜만에 뭐라도 사고 싶어 시내로 나가는 길”이라며 발걸음을 옮겼다.

6년 전 이곳에 세를 든 문씨의 집은 서울에선 찾아보기 힘든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25만원짜리다. 전남 함평 출신인 그는 40여년 전 고향을 떠나 서울의 빈민가를 전전해 왔다. 호박마을에 들어오기 전에 살던 곳은 바로 옆 동네인 만리동이었다. 그곳에서 9년을 살다가 재개발에 떠밀려 온 곳이 바로 호박마을이다.

4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그나마 사람들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재개발이 본격화되고 시행사들이 차례로 집을 사들이면서 세입자 신세였던 주민 대부분은 하나둘씩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떠난 마을의 텃밭엔 잡초만 가득한 상태다.

철거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소식에 문씨는 “어차피 아흔 다 된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살겠느냐”면서도 “여기서마저 밀려나면 고향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슬하에는 자식이 4명 있지만 부양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사정이 있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도 거의 일흔인데 누가 누굴 먹여 살리겠느냐”며 자식 편을 들었다.

‘철거’라는 글자가 적힌 마을 벽 모습.

마을에는 이들 말고도 한두 가구가 더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사정은 조금 다르다. 2년 전 이곳에 들어온 40대 남성은 집주인이던 외할머니가 사망한 뒤로 비어 있던 집을 손봐서 거주하고 있다. 또 다른 한 집은 얼마 전부터 집주인이 들어와 지낸다는 소문이 돈다. 하지만 이날 내내 인기척은 없었다. 이들의 사연은 듣지 못했다. 한 인근 주민은 “재개발이 다가오니까 이사 비용이나 보상금을 더 받아내려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호박마을에서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는 1971년 양씨와 문씨 같은 ‘난장이’들을 밀어내고 세워진 성요셉아파트가 있다. 당시만 해도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아파트였지만, 50여년이 흐른 지금은 신세가 완전히 바뀌었다. 인근에서 가장 낡은 건물 중 하나로 꼽힌다. 근래에는 오히려 ‘뉴트로’(새로움과 복고를 합친 신조어) 유행에 편승한 청년들이 찾아드는 장소가 됐다.

양씨는 “아파트는 남아 있지만 전에 살던 어르신들은 이미 많이들 그곳을 떠났다”고 했다. “헐릴 날만 기다리는 건 나나 저 아파트나 마찬가지”라는 게 그의 얘기였다.

글·사진=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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