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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혁명은 불가능해진 건가

권기석 국제부장


이란의 16세 소녀 니카 샤카라미는 지난해 9월 20일 마흐사 아미니의 ‘히잡 의문사’에 항의하는 테헤란 집회에 나갔다가 실종됐고, 열흘 만에 시신으로 돌아왔다. 보안군이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의 시신은 가족의 뜻과 다른 곳에 묻혔다. 장례가 또 다른 시위로 번질 것을 두려워한 당국이 시신을 훔쳐간 것으로 의심된다. 친구들은 니카의 죽음 전후로 이상한 점을 느꼈다. 실종 직후 닫혔던 니카의 인스타그램 페이지가 사망 한 달여가 지난 10월 28일 다시 열렸다. 비활성화됐던 텔레그램 계정도 10월 12일 대화가 가능한 상태가 됐다. 인권 단체와 해외 언론들은 이란 당국이 해킹 등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니카의 스마트폰에 접근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가 이 문제를 내부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한다.

다른 이란 여성 네긴(가명)은 정부가 자신의 텔레그램 계정을 해킹했다고 생각한다. 반정부 시위 현장에서 체포돼 기소된 그는 눈이 가려져 신문을 받을 때 텔레그램 채팅과 전화 기록, 문자 메시지가 정부의 손에 들어갔음을 알게 됐다고 한 미국 언론에 털어놨다. 이란 관리들은 그에게 ‘우리는 증거가 있고, 모든 걸 알고 있다. 너는 사형에 처해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해를 넘겨 이어지는 이란 반정부 시위가 진전이 없는 배경에 ‘디지털 감시’가 있어 보인다. 정부가 시위 참가자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는 정황이 속속 제시되고 있다. 이란 안팎의 인권 운동가들은 수년 전부터 정부가 휴대전화에 원격으로 접속해 조작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경고했다.

디지털 감시는 얼마 전 중국에서 효과를 발휘했다. 지난해 11~12월 코로나 봉쇄 완화를 요구하는 ‘백지 시위’에서 20대 장씨는 ‘무서운 경험’을 했다. 베이징 시위 현장으로 향하면서 그는 신원 노출을 막기 위해 얼굴을 덮는 방한모와 고글을 착용했다. 사복 경찰관이 따라오는 것을 느꼈을 땐 외투를 다른 것으로 갈아입었다. 그날 그는 체포되지 않았고, 스스로 ‘완벽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날 경찰의 전화를 받았다. 경찰관은 휴대전화가 시위 지역에 있었음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20분 뒤 경찰관 3명이 그가 사는 곳 문을 두드렸다. 장씨는 통화에서 자신이 어디에 사는지 말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경험을 한) 시민을 동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사람들이 거리를 떠날 것 같다”고 언론에 말했다.

2011년 튀니지를 시작으로 아랍에서 반정부 시위가 확산됐을 때 디지털 기술은 혁명의 강력한 도구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로 독재 정권에 대한 분노를 공유했다. 시위에서 희생자가 발생했을 때 이 소식을 빠르게 전파한 것도, 광장에서 시위대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것도 SNS였다. 전 세계 언론은 “SNS 혁명이 아랍의 봄을 불러왔다”고 흥분했다.

그렇지만 그사이 권위주의 국가들은 더 강력한 감시 기술을 개발했다. 중국은 얼굴 인식이 가능한 카메라를 곳곳에 설치하고 시위가 있을 때뿐 아니라 평소에도 이를 통해 사람들의 행동을 분석한다. 이런 카메라가 전국에 5억대 있고 축적된 얼굴 이미지는 25억장에 이른다고 한다. 과거 혁명 세력의 조합이 ‘목숨을 건 소수 지도자와 익명의 군중’이었다면 이제는 모두가 목숨을 걸어야 혁명을 시도해볼 수 있게 됐다.

20세기는 전 세계에서 숱한 혁명이 성공한 ‘혁명의 시대’였다. 21세기가 시작된 지 20여년이 지났지만 어느 나라에서도 혁명이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감시와 통제 기술의 발달일 것이다. 기술로 삶은 편리해졌지만 부조리한 세상을 뒤엎는 건 어려워졌다.

권기석 국제부장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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