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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 초심자의 마음

양민철 사회부 기자


새해 결심이 흐려지는 데는 1주일이란 시간도 길지 않은 것 같다. 요즘 다니는 새벽 수영장과 헬스장을 보면 새해 첫날을 시작으로 하루가 다르게 사람 숫자가 준다. 물론 운동을 며칠 빠질 수 있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 다만 새해 계획의 80%는 2월 둘째 주를 넘기지 못한다고 한다. 정확한 연구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20% 안에 들겠다’는 마음을 다지는 일이 더 중요할 것이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5일 ‘초심자의 마음’이란 칼럼에 이런 통계를 전하며 “올해는 최고의 전문가가 되려고 노력하기보다 초보자의 자세에 관심을 가져보라”고 제안했다. 최고의 경지에 오르려 야심찬 계획을 세우기보다 초보자의 순수한 호기심과 유연성, 열정으로 목표에 다가가 보라는 것이다.

칼럼을 쓴 제미마 켈리 기자는 한발 더 나아가 “어떤 일에 전문가가 되는 것은 때때로 당신을 ‘깨달음’에서 멀어지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전문성의 저주’가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는 초심자와 달리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선입견과 습관에 매몰돼 폐쇄적 태도를 갖기 쉽다. 켈리 기자는 가상화폐 루나·테라 및 FTX 대폭락 사태가 벌어지기 전부터 전문가들의 지나친 암호화폐 낙관론을 경고하는 칼럼을 써 왔다. 그는 “아무런 의문이나 점검 없이 자신 또는 타인의 전문성을 과신한다면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켈리 기자의 글을 보며 지난주 논란이었던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의 ‘기자들과의 돈거래’ 사건을 떠올렸다. 김씨와 돈거래를 한 기자들은 법원·검찰을 취재하는 법조 기자 출신들이었다. 대부분 법조팀장까지 한 소위 법조 전문가였다. 대장동 사태 이전 법조를 출입해 본 기자들은 그와 직접 인연이 있든 없든 김씨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 이가 많을 터다. 30년 기자 생활 중 법조 기자만 20년 넘게 했고, 물려받은 땅이 많아서 부자인데, 법조인과 기자 선후배를 가리지 않고 돈을 잘 쓴다는 말이 많았다. 기자가 아니라 법조 브로커 같다는 평도 있었다.

법조인 중에도 그런 김씨를 받아들이는 사람과 경계하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고위 검사 출신 변호사는 “밥 먹자고 해서 나갔는데 본인은 없고 후배 기자들만 있더라. 그리고 어디 가선 나랑 밥도 먹고 친한 사이라고 떠벌리고 다녀서 연을 끊었다”고 했다.

법조 취재 경력이 길진 않지만 4년 넘게 서초동에서 만난 취재원 중엔 지나칠 정도로 원리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많았다. 어떨 땐 너무 거리를 둬서 서운하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지금 와서 보니 그게 정답이었다. 특별히 대단한 건 아니었다. 사소하더라도 이상하다 싶은 것은 하지 않고 문제가 되겠다 싶은 건 피했다. 매일 보는 게 받아선 안 될 돈을 받고, 해선 안 될 일을 해서 잡혀온 사람들이니 당연한 일이다. 한 판사는 동문회 나간 지 오래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라리 세상 물정 모른다는 소리 듣는 게 낫다”고 했다. 지나칠 정도로 원칙을 지키는 취재원과 이를 닮은 동료, 선후배들을 만난 덕에 김씨 사건을 봐도 별걱정이 없다.

한때 법조통으로 이름을 날린 선배 기자들이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거나 사법처리 대상에 서는 모습을 여러 번 본다. 누군가 주는 돈을 넙죽 받았거나 형사사건 피의자로 입건되는 식이다. 김씨 사태처럼 과거의 일이 뒤늦게 밝혀지는 경우도 있다. 타사 기자와의 돈거래가 위법한 일이냐, 다른 분야에선 비일비재한 일인데 왜 이쪽만 문제 삼느냐고 항변해도 면죄부는 될 수 없다. 공짜 골프는 없고 누군가 내게 잘해준다면 그건 대가가 따르는 일이다.

새해는 초심자의 마음을 되새기고 싶다. 김씨와 6억원대 금전거래를 했다는 한 일간지 간부는 2년 전 변호사 업계를 다룬 칼럼에서 ‘선배들이 저 모양이란 걸 똑똑히 봐두라’고 적었다. 그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양민철 사회부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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