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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작가와 정원

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


연휴에 ‘에밀리 디킨슨, 시인의 정원’(시금치)을 펼쳤다. 19세기 미국의 대표 시인이지만 집에 처박혀 사람을 대면치 않던 은둔 작가로만 기억했는데, 정원과 어우러지니 밝게 빛났다. 1830년 보스턴 인근 애머스트에서 태어난 시인은 어릴 적부터 “나는 늘 진흙을 묻히고 다녔다”고 할 만큼 정원과 숲을 누비며 자랐고, 식물학을 배우면서 가드닝에 진심인 가족과 열정적으로 정원을 가꿨다. 400여 식물을 채집했고, 꽃이나 잎을 끼워 보낸 1000여통의 편지와 자연과 사람 속에서 포착한 1700여편의 시를 썼다. 정원가인 이 책의 저자(마타 맥다월)가 시인을 정원가 관점으로 바라본 것이 신선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봄날의 책)도 다시 꺼내 들었다. 늘 떠오르는 조울증과 자살 얘기가 아닌, 울프 부부가 22년간 영국 남부의 몽크스 하우스를 얻어 집을 고치고 정원을 가꾸던, “지금 이곳에서의 삶이 얼마나 달콤한지, 규칙적이고 정돈된 생활, 정원, 밤의 내 방, 음악, 산책, 수월하고 즐거운 글쓰기”인 생활 이야기다. 인테리어 전문가인 캐럴라인 줍이 내셔널 트러스트가 관리하는 몽크스 하우스에 10년간 거주하면서 쓴 이 책은 정원이 작가에게 얼마나 큰 위로를 줬을지 가늠케 한다.

내친김에 서가를 더 뒤졌다. 체코의 국민작가 카렐 차페크는 ‘정원가의 열두 달’(펜연필독약)에서 “인간은 손바닥만 한 정원이라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딛고 있는지 알기 위해”라고 힘줘 말했지만, 우린 열혈 정원가인 작가가 프라하의 집 정원에서 매월 끊임없이 벌이는 공상과 실수를 낄낄거리며 읽는다. 그 해학 속에 반나치주의에 엄격했던 작가의 여운이 깊게 스민다. ‘헤르만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이레)도 찾아냈다. 작가가 독일 가이엔호퍼와 스위스 몬테뇰라 등에서 정원을 가꾸며 이겨낸 삶의 불행, 전쟁과 나치즘 등이 선명히 대비된다. 결론은 정원이나 동네 공원, 아님 작은 화분에서라도 가드닝하는 새해!

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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