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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미풍양속이란 무엇인가

장유승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풍속이란 옛날부터 전해오는 생활관습이다. 생활관습은 환경에 따라 달라지므로 자연히 지역마다 독특한 풍속이 형성된다. 1530년 편찬된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조선시대 전국 각 지역의 다양한 풍속을 확인할 수 있다. 한양의 풍속은 “신의를 숭상하고 유교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유교국가 조선의 수도에 어울리는 풍속이다.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제주 풍속은 “어리석고 검소하지만 예의가 있다”는 것. 못 배우고 가난하지만 순박하고 선량하다는 말이다. 평안도 의주 풍속은 “활쏘기와 말타기를 잘하고 사냥을 좋아한다”는 것으로 거친 변방 환경에 적응한 결과다.

인접한 지역도 풍속은 사뭇 다르다. 똑같은 경상도인데 안동은 “부지런하고 검소하며 농사와 양잠에 힘쓴다”, 풍기는 “강하고 사납다”, 밀양은 “화려하고 사치스럽다”, 울산은 “무예를 숭상하고 장사를 좋아한다”고 돼 있다.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풍속은 크게 달라지는 모양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부정적인 풍속도 보인다. “무당과 귀신을 믿는다”, “약삭빠르고 영리하다”, “거칠고 사나우며 소송을 좋아한다”. 이 역시 환경에 적응한 결과이니 나쁘게 볼 것 없다. 지역 문화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런데 이처럼 다채로운 지역 풍속은 조선후기에 들어오면서 자취를 감춘다. 조선후기 지리지에 보이는 지역 풍속은 건전하지만 천편일률적이다. “부지런히 농사를 짓는다”, “검소하고 순박하다”, “어른을 공경한다”. 전국의 풍속이 별 차이가 없다. 그 외 풍속은 전부 사라진 것일까? 아니다. 그 풍속은 지금도 남아 있다. 단지 기록에서 지워졌을 뿐이다.

다채로운 지역 풍속이 지워진 이유는 성리학적 이념이 향촌 사회 구석구석까지 침투한 결과다. 성리학적 향촌 질서 확립은 조선후기의 국가적 과제였다. 확립하지 못하면 지방관의 책임이며 지역민의 수치다. 따라서 성리학적 가치관에 어긋나는 풍속은 애써 외면했다. 엄숙주의를 고집한 결과, 각 지역의 다채로운 풍속 위에 성리학적 가치관이 만들어낸 천편일률적 풍속이 덧씌워졌다. 농촌 사회의 구성원들이 유교 윤리를 내면화하고 사대부 계층의 지배에 순종하며 근면하고 검소하게 살아가는 모습, 그것은 사대부 계층이 상상한 향촌 사회의 이상적 모습이었다. 우리가 상상하는 조선 사회의 모습도 이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 허구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전통적 생활관습을 ‘미풍양속’이라고 부른다.

미풍양속은 아름답고 선량한 풍속이라는 말이다. 듣기엔 좋지만 추상적이고 주관적이다. 미추와 선악의 판단은 개인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중추원에서 조사한 조선의 미풍양속은 다음과 같다. “과부는 미망인으로 자처하며 죽을 때까지 소복을 입고 잔치자리에 참석하지 않는다”, “재혼한 여인은 죽을 때까지 수치를 품고 여인들의 모임에 감히 나오지 못한다”. 옛날에는 미풍양속일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아니다. 한때 명절 떡값이라는 명분으로 주고받는 뇌물을 미풍양속이라며 눈감아주던 시대가 있었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는 행위를 ‘미풍양속을 저해한다’는 애매모호한 핑계로 금지하는 일은 지금도 비일비재하다.

미풍양속은 구시대적 가치관을 강요하고, 부정부패를 정당화하며,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명분으로 이용돼 왔다. 따라서 우리는 미추와 선악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내 눈에 좋아 보인다고 좋은 게 아니고, 내 눈에 꼴보기 싫다고 나쁜 게 아니다. 아름답고 선량한 풍속이라 믿어왔던 관습이 사실은 구시대적 악습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무엇이 미풍양속이고 무엇이 구시대적 악습인지, 성급한 판단은 금물이다.

장유승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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