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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칼럼] 장애인들 시위가 그리 불편한가


지속적인 차별 용어 개선 불구
장애인 인식은 여전히 후진적

전장연 출근길 지하철 시위는
‘핸디캡의 함정’ 탈피 몸부림

정부는 무관용 내세우기보다
장애인 포용 시스템 마련해야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 차별 용어만큼이나 순화작업이 활발한 분야가 장애인 차별 용어일 듯싶다. 우리나라도 일상에서 무심코 내뱉는 차별적 용어 사용을 지양하자는 캠페인이 종종 펼쳐진다. 서구 사회에서 장애인의 영어 표현인 ‘handicapped’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뜻하는 부정적 뉘앙스가 있다는 이유로 퇴장하고 이젠 가능성(able)이 담긴 ‘disabled’가 널리 통용된다. 핸디캡이 스포츠에서 불리하다는 뜻을 가진 용어로 사용되는 것도 용어 개선에 영향을 미쳤다. 이를테면 골프에서 스트로크 방식으로 내기할 때 실력이 우수한 상급자가 하급자에 미리 핸디캡 타수만큼 게임비를 지급한다. 그런데 산술적으론 핸디캡을 보정해 공정한 듯 보이지만 하급자는 십중팔구 돈을 잃는다. 드라이버 샷 등의 비거리 차이와 보기 플레이(+18) 이하 하급자의 슬로프 레이팅이나 약한 멘탈 등을 고려하지 않고 상급자 눈높이에서 기준을 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하지 않는 이상 하급자는 상급자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핸디캡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1년 넘게 지하철 시위를 지속하는 걸 보면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 수준이나 사회적 인식이 차별적 용어 사용만 자제한다고 해서 나아졌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 물론 전체 지하철역에 장애인 이동 편의시설이 96%나 설치됐기에 서울 시민 출근길을 볼모로 한 민폐 시위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수긍할 측면이 없진 않다. 또 국회에 1조3000억원 이상 장애인 예산 증액을 요구한 것에 대해서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들 역시 상당하다.

그러나 한 발짝 물러나 장애인 입장에 서면 그들이 왜 시위에 나서는지 짐작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내기 골프에서처럼 정부가 일방적으로 책정한 시혜의 대상에 묶인 채로 불편하게 살아가는 핸디캡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이해하면 안 될까.

지하철 이동시설 설치율 96%도 일반인이 이용하기 편리하게 설계된 지하철 시설 기준에서 나온 수치일 수 있는 것이다. 이 정도까지 해줬는데 떼를 쓴다고 비난하는 건 오만이요 또 다른 차별이다. 몇 년 전 일반인의 88%가 장애인을 차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지만, 장애인의 79%는 자신들이 사회적으로 차별받는다고 응답했다는 조사 결과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틈이 얼마나 큰지를 말해준다.

27년 전 선진국의 장애인 복지시스템 취재차 미주와 유럽 13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가장 눈에 띈 곳은 스페인의 전국적인 시각장애인 모임인 ‘온세’였다. 1939년 스페인 정부는 장애인들이 핸디캡의 함정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았다. 스페인 내전으로 눈을 다친 시각장애인들에게 복권사업을 맡긴 것이다. 영세한 규모였던 온세는 1987년 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증까지 따낸 엘리트 시각장애인들이 등장하면서 복권사업을 모태로 50여개 기업을 창업했다. 정부에 손을 벌리는 대신 자신들이 세운 기업에 다른 지체 장애인들까지 취업시키는 복지의 선순환을 이룬 것이다. 온세 시스템은 현재 라틴아메리카 19개국에 진출해 있다. 장애인이 필요로 하는 교통 편의시설을 자신들이 번 돈으로 개선할 정도니 지하철에서 시위를 벌이는 한국 장애인들로선 꿈같은 얘기다.

더욱 아쉬운 건 우리도 장애인 정책을 선진화할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는 점이다. 당시 온세 시스템의 전격 도입을 계획했던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통령 보고를 앞두고 경질된 것이다.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2021년 6월에도 기회가 찾아온 듯해 혹시나 하고 기대했으나 역시나였다. 문재인 대통령을 따라 스페인을 국빈방문한 김정숙 여사가 온세 재단에서 스페인 왕비와 복권을 교환하는 이벤트를 벌였지만 이후 후속 대책 소식은 듣지 못했다. 장애인 의무고용 비율조차 지키지 않고 국민 혈세로 부담금을 대신 낼 궁리만 하는 정부로부터 로또복권 운영권을 장애인에게 내주기를 기대하는 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일지 모른다.

누구나 장애를 겪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장애인 문제의 책임은 사회 전체에 있다. 스페인과 같은 온세 시스템까지는 아니더라도 장애인 스스로의 선택으로 완전한 사회참여가 가능하도록 포용적인 시스템을 갖추도록 노력하는 건 정부의 몫이다. 국민의 5%를 차지하는 장애인도 책임지지 못하면서 무관용 처벌이니 민폐 시위 운운하는 한국에 희망은 없다.

이동훈 논설위원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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