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20대 초반인데 팀장·본부장?… 보험설계사 직책 뻥튀기 심각

초짜들도 허위·과장 명함 뿌리고
회사는 영업 실적 위해 모른체
소비자 기만 꼼수 영업 늘어도
당국·업계는 “규정 모호” 손놓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암 보험에 가입하기 위해 지인으로부터 ‘팀장급 보험설계사’를 소개받은 박모(33)씨는 설계사가 건네준 명함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20대 초반의 앳된 얼굴인데도 그가 건넨 명함에는 ‘A생명 보험본부 FC팀장’이라고 적혀있던 탓이다. 박씨는 “상위 직급일수록 더 믿음직스럽다고 생각하는데 20대가 팀장 명함을 내미니 신뢰가 더 떨어졌다”며 보험 가입을 미뤘다.

보험설계사들이 자신의 직책을 허위 또는 과장되게 표시해 영업에 나서는 관행이 여전히 근절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도 팀장, 부팀장, 본부장 등 일반적으로 고위급으로 알려진 직함을 내세우며 영업에 나서는 것이다. 일부 GA(보험대리점)에서는 더 나아가 주부, 무직자 등 경력과 자격이 뚜렷하게 없는 이들을 채용하며 ‘팀장급 직원을 모신다’며 광고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를 감독해야 할 금융당국은 관련 규정이 모호한 탓에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27일 보험업계와 금융감독당국에 따르면 적지 않은 보험설계사들이 불분명한 직급을 내세우며 영업에 나서고 있다. 이들이 쓰는 명칭은 보통 팀장, 부팀장, 지점장, 본부장 등이다. 아무리 경력이 없고 나이가 어려도 해당 경력에 걸맞은 ‘사원’ ‘주임’ ‘대리’ 타이틀은 찾아보기 어렵다. 일반적인 기업에서 팀장은 최소 10~15년을 근속해야 얻을 수 있는 직위지만 보험설계사 업계에서는 갓 입사한 ‘초짜’에게도 이 같은 직책이 주어진다.

이들의 ‘꼼수’는 직책을 허위로 표시하는 것과 과장되게 표시하는 것으로 나뉜다. 허위 직책의 경우 애초에 부여받지 않은 직책을 명함 등에 적어놓는 행위가 해당한다. 과장이 부장으로, 부장이 이사로 자신의 직책을 임의로 높이는 식이다. 과장된 직책 표시는 갓 입사한 사원에게 명목상으로만 팀장 직위를 부여하는 등의 경우가 있다. 대형 보험사 상품을 판매하는 GA 소속 직원이 자신을 ‘유명 보험사 전문설계사’ 등으로 모호하게 소개해 해당 보험사에 근무하는 것처럼 오인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포털·사회관계망(SNS) 등지에는 보험설계사라는 명칭을 아예 사용하지 않고 FC(Financial Consultant·재무설계사), 금융전문가 등 모호한 명칭을 사용하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업계에서는 설계사들이 영업을 보다 수월하게 하기 위해 이런 영업 방식을 고수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한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보험 상품이 워낙 어렵고 불완전판매가 많다보니 경험이 없는 설계사에게는 보험을 들지 않으려 하는 고객들이 많다”며 “(팀장 같은) 믿을만한 직책이 없으면 영업 자체가 안 되니 회사에서도 모른 척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직위, 직책을 임의로 높여 자신을 소개하는 것은 비단 보험업계뿐만 아니라 다른 영업직군에서도 관행처럼 벌어지는 일”이라고 전했다.

반면 이 같은 영업방식이 소비자들을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크다. 애초에 소비자들이 고위직급 설계사를 더 찾는 이유는 설계사들의 전문성이 떨어지면 체결된 보험에 대한 사후관리가 미흡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관행처럼 고위직급이 남용되는 상황에서는 소비자들이 실력 있는 설계사들을 가려내기 쉽지 않다.

금융소비자들의 초짜 설계사에 대한 우려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말 기준 보험설계사들의 13월차 정착등록률은 생명보험사 41.4%, 손해보험사 53.2%에 불과했다. 정착등록률은 첫 등록 이후 1년이 지난 13개월차에 정상적으로 보험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설계사의 비율이다. 즉 설계사 10명 중 5~6명은 일을 시작한 지 1년 이내에 일을 그만뒀다는 뜻이다. 2017년에는 각각 38.6%, 50.3%에 불과했던 등록정착률이 해가 지날수록 소폭 증가 추세지만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주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수치다. 이렇게 설계사들이 계약을 체결한 뒤 일을 그만두면 그들이 그동안 체결한 보험계약들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 서류상으로는 타 설계사에게 이관되지만 이렇게 떠넘겨진 계약에 대한 사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금융소비자 보호 책임이 있는 생명·손해보험협회는 개별 회사에 마땅한 조치를 내리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사실상 방관하고 있다. 생명보험협회 관계자는 “설계사의 직책이나 직위는 각사의 별도 인사체계와 관련된 부분이라 협회가 일률적으로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며 “개별사마다 존재하는 내부통제제도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역시 보험사들의 이런 영업 관행을 제재할 마땅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현재 시스템상 보험설계사의 이름과 소속 등은 조회할 수 있지만 그들이 자체적으로 부여받은 직위나 직책은 확인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보험업법에 설계사의 직위·직책을 별도로 다루는 부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가입자가 이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되면 형법상 사문서위조죄로 설계사를 고발하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