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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슬램덩크와 노재팬 운동

고세욱 논설위원


설 연휴 때 자녀와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슬램덩크)를 봤다. 원작을 보지 않았기에 흔히 얘기하는 어릴 적 추억 때문은 아니다. 이미 본 ‘아바타-물의 길’ 말고 설날 가족 영화를 고르다보니 슬램덩크가 낙점됐다. 중년이 열광하는 화제작에 대한 호기심이 전혀 없진 않았지만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영화를 본 뒤 달라졌다. 원작을 몰라도 이해하는 데 지장 없는 오밀조밀한 스토리 전개, 재미, 감동, 구식 화질이 주는 묘한 매력까지. 뜻밖의 득템을 한 기분이랄까. 50대 기자와 20대 대학생 아들, 농구를 잘 모르는 10대 딸까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아바타보다 재밌다.”

그런데 북산고와 산왕공고 간 치열한 승부, 북산고 팀원 간 갈등과 비슷한 모습이 장외에도 등장했다. ‘NO재팬 운동’ 논란이다. 이달 초 슬램덩크 개봉 직후 한 친야 커뮤니티에서 “노재팬이라 고민했는데 워낙 의미 있는 만화라 안 볼 수 없었다”는 글이 떴다. ‘노재팬은 DSLR(디지털카메라)과 슬램덩크까진 허락을’, ‘노재팬 아닌 레스재팬(일본제 덜 쓰기)도 좋다’는 댓글도 이어졌다. 슬램덩크 홍보 자제하라는 이에게 “그러는 당신은 왜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오타니는 응원하냐”고 발끈한다. 보기 드문 실랑이다. 또 다른 진보 성향 커뮤니티에서도 “불매운동 하는 척(한 뒤) 슬램덩크 보고 오겠다”는 식의 글이 적잖다. 26일 개장한 슬램덩크 팝업 스토어 사진도 속속 올라왔다. 반대 진영 커뮤니티와 포털사이트에선 노재팬 운동판 ‘내로남불’이라는 조롱이 쏟아졌다. 기사 댓글마다 난타전이 펼쳐졌다. 가장 반일 정서가 강한 40대가 슬램덩크 열혈팬 층인 점도 보수 진영에선 꼬투리 잡는다. “유니클로엔 가혹하면서 슬램덩크엔 왜 너그럽냐.”

이런 논란은 사실 비정상이다. 반일 운동의 역사는 길어도 양국의 밀접한 관계로 인해 일본의 모든 걸 거부하지는 않았다. 시민단체가 특정 사안을 갖고 불매운동을 하면 정부는 막후 조정에 힘썼다. 이게 정치고 외교다. 하지만 2019년 7월 시작된 ‘노재팬 운동’은 달랐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촉발된 분노를 정치가 부채질했다.

당시 한 여당 의원은 “의병을 일으키자”고 했고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죽창가’를 SNS에 올렸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은 ‘한·일 갈등이 이듬해 총선에서 긍정적’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반일 정서 이대로 쭉~’이란 속내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노재팬 운동 정치화의 화룡점정이었다. 팬덤 많은 대통령이 거들자 지지자들은 거칠 게 없었다. 전 일본 상품 불매운동에 힘이 실렸다. 유니클로 매장을 찾은 이가 친일파로 찍혔고 일본차 주유 거부도 벌어졌다. ‘친일=보수=악’의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소수 의견이나 이견은 엄두를 못냈다.

서서히 한계가 보였다. 노재팬을 외치던 게임 마니아는 닌텐도 ‘동물의 숲’ 출시 때 흔들렸다. 일부 반일주의자는 추억의 포켓몬빵을 조심스레 샀다. 숨죽였던 여행족들은 일본이 무비자 여행을 허용하자 ‘고(go)재팬’을 외쳤다. 지난 3개월간 일본행 항공권 발권량은 노재팬 운동 전인 2018년 동기보다 68% 급증했다. 선택적 반일이 날로 늘어났다. 예외가 많다는 건 원칙과 목표가 잘못됐다는 의미다. 슬램덩크 인기는 근본주의적 노재팬 운동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정치발 과잉 민족주의를 반면교사해야 한다. 하지만 공수가 바뀐 진영 체제에 자성과 교훈을 기대하긴 쉽지 않다. 최근 한국의 반중 감정이 세계 1위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2030세대 상당수가 “일본은 행위가 밉지만 중국은 존재 자체가 싫다”고 한다. 하필 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반중 정서를 우려하는 책을 추천했다. 보수 진영이 놓칠 리 없다. 이번에는 ‘친중=진보=악’ 프레임이다. 중국의 무례함, 억지, 궤변의 일상화는 좋은 토양이다. 공교롭게도 1년 뒤 총선이다. 노재팬에 이은 노차이나가 어른거린다. 4년 전의 정치 선동이 재연될까 걱정이다.

시행착오를 극복하려면 역지사지가 중요하다. 슬램덩크를 보던 노재팬 운동가가 몰래 사진이 찍힌 뒤 ‘친일파’라는 딱지가 붙으면 어떤 심정일까. 개인이 기호와 소신을 따르는 데 눈치를 보고 뻘쭘하게 만드는 대의라면 폐기하는 게 낫다. 이런 인식을 가져다 준 것만으로도 슬램덩크는 소중한 영화다. 슬램덩크는 200만 관객을 눈앞에 뒀다.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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