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 20조 이상 걷는 각종 부담금, 본래 목적 아닌 ‘쌈짓돈’ 전락”

[스토리텔링 경제] 국민일보 ‘지난해 부담금 보고서’ 분석

기획재정부 기금부담금운용평가단의 ‘2022년 부담금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약 21조4000억원의 정부 부담금이 2021년 징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부담금 중에는 영화 관람권을 살 때 부과되는 약 300원의 부담금도 포함돼 있다. 사진은 최근 누적 관객 1000만명을 돌파한 영화 ‘아바타2’ 홍보물이 지난 24일 서울 한 영화관에 걸린 모습. 뉴시스

연간 20조원 넘게 걷히는 준조세 성격의 정부 부담금이 애초 목적과 다르게 과잉 징수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부담금은 특정 공익사업의 경비 충당을 위해 해당 사업과 이해관계가 있는 국민이나 기업에게 부과되는데, 이런 원칙에 위배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와 경기 침체로 가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의 ‘쌈짓돈’으로 전락한 부담금을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6일 국민일보가 입수한 기획재정부 기금부담금운용평가단의 ‘2022년 부담금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정부는 18개 부처에서 운영하는 90개 부담금을 통해 약 21조4000억원을 징수했다. 부담금 징수액은 2017년(20조2000억원) 처음으로 20조원을 넘긴 이후 줄어들지 않고 있다.


민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평가단은 90개 부담금 가운데 31개를 정밀 분석한 결과 금융위원회 소관의 ‘한국화재보험협회출연금’에 대해 폐지를 권고했다. 해당 부담금은 화재예방 및 소화시설에 대한 안전점검 목적으로 손해보험회사 등에게 부과된다. 손보사들은 2021년 출연금 명목으로 160억원을 냈다. 평가단은 “협회비인지 부담금인지 성격이 모호하기 때문에 협회 간의 자율적인 비용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해양수산부 소관 ‘해양심층수이용부담금’도 평가단의 지적을 받았다. 정부는 해양생태계 복원을 근거로 먹는 해양심층수 제조업자 등에게 부담금을 부과되고 있다. 다만 평가단은 부담금으로 조성된 재원이 수산업 종사자 지원 자금으로 사용되고 있어 애초 부과 목적과 어긋난다고 보고, 향후 부담금의 존치 여부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평가단은 또 수도권에 인구집중을 유발하는 대형건축물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에게 부과되는 ‘과밀부담금’과 토지의 형질변경을 수반하는 개발사업의 시행자에게 부과되는 ‘개발부담금’에 대해서도 운영 개선 권고를 내렸다. 평가 대상이었던 31개 부담금 가운데 절반을 훌쩍 넘는 21개에서 지적 사항이 발견됐다.

올해 평가 대상이 아니었던 일부 부담금도 수년간 적절성 논란이 제기돼 왔다. 국민들은 영화관에 가서 1만원짜리 관람권을 끊을 때마다 약 300원의 부담금을 내고 있다. 한국 영화산업의 발전과 진흥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부과되는 ‘영화상영관입장권 부과금’ 때문이다. 영화 소비자가 영화산업의 발전이나 진흥 사업 수행의 직접적인 수혜자로 보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평가단은 2017년 개선 권고를 내렸지만 해당 부담금은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출국납부금’도 논란 거리다. 관광진흥개발기금법은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가는 출국자들은 1인당 1만원의 출국납부금을 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내 관광산업 진흥이 목적이다. 다만 국외 출국자가 국내 관광 발전을 저해한다고 보기 어렵고, 국내 관광 진흥의 수혜자도 아니라는 점에서 부담금 부과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에선 ‘폐기물부담금’을 문제 삼고 나섰다. 해당 부담금은 재활용이 어려운 제품·재료·용기의 제조업자나 수입업자에게 폐기물 처리 비용을 부과·징수하는 제도다. 껌도 부과 대상에 포함된다.

그러나 껌에는 유해물질이 없어 소각이 가능하고, 자연 상태에서 쉽게 분해돼 부담금을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경유차에 연간 10만~80만원을 물리는 ‘환경개선부담금’은 국가 전체의 환경개선 사업에 쓰이는데, 이 부담을 경유차주에게만 물리는 것도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다.

이 때문에 감사원과 국회를 중심으로 부담금 구조조정 요구가 수차례 제기됐다. 감사원은 2021년 8월 ‘주요 부담금 부과·징수 실태’ 감사보고서에서 “부담금은 과다하게 징수되면 국민에게 불편을 초래하며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저해하고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필요한 분야에 최소 한도로 부과되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사실상 부담금이 정부의 쌈짓돈처럼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연간 부담금 징수액 대부분은 지출용도가 정해진 기금이나 특별회계로 넘어가게 된다. 기금·특별회계 사업을 관리하는 소관부처는 부담금을 통해 매년 안정적으로 예산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부담금을 줄이거나 폐지하면 그만큼 기존 세금을 높이거나 새로운 세금을 도입해야 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부담금 대신 국민 체감이 높은 세금을 조정하면 조세 저항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정부가 2002년 부담금관리기본법 시행 이후 평가단을 구성해 부담금 운용 평가를 실시해 왔지만 부담금 대부분이 존치 상태인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정부가 국민의 호주머니 사정을 챙기고, 부담금이 본래 목적대로 운용되도록 부담금 운영 실태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책 목적이 달성됐거나 공익사업과 부과 대상의 관계가 불분명할 경우 규제 혁파를 위해 일부 부담금을 폐지 또는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평가단의 퇴출 의견을 내면 정부가 이를 반영하는 강제 규정을 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오문성 한양여대 교수는 “세금과 부담금이 중복 적용되는 사례를 포함해 부담금 전반에 대한 철저한 실태분석이 필요하다”며 “평가단의 합리적인 제언을 정부가 수용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신설하고, 신속한 부담금 구조조정을 통해 국민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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