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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외교 중심에 선 80년 ‘恨의 매듭’

[커버스토리] ‘강제징용 배상안’ 해법 찾나

용산역 광장 앞 강제징용 노동자상.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방법을 도출하기 위한 한·일 외교 당국의 물밑 작업이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동북아 지역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고조와 함께 ‘북·중·러 대 한·미·일’ 대립 구도가 굳어지면서 한·일 안보 협력의 필요성이 커졌고, 이 때문에 양국 모두 최대 갈등 현안인 강제징용 문제를 어떻게든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해법 추진의 강도와 속도에서는 미묘한 온도차가 느껴진다. 한국 정부는 되도록 이른 시일 내 해결을 보려는 의지가 강한 데 반해, 일본 측에서는 성급하게 합의했다가 나중에 다시 엎어지는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총선 모드 돌입하면 해결 동력 약화

통상 국민의 반발이 크거나 민감한 사안의 경우 정권의 힘이 가장 센 임기 초에 해결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강제징용 문제도 마찬가지다. 꽉 막혀 있던 한·일 정상회담을 2년9개월 만에 재개한 윤석열정부는 양국 간에 어렵게 형성된 유화 모드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강제징용 말고도 한·일 사이에 많은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는 점 또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당장 지난 19일 일본이 조선인 강제노역의 현장인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겠다고 재신청하는 ‘돌발 변수’가 등장했다. 이르면 올봄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도 시작돼 양국이 또 한 번 갈등을 겪을 수 있다. 여기에 독도 영유권 갈등은 상시 존재한다. 정부로선 가뜩이나 지뢰밭인 양국 관계 속에서 가장 시급한 강제징용 문제 하나라도 먼저 해결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올해 하반기부터는 본격 ‘총선 모드’에 들어간다는 점도 고려 요인일 것으로 보인다. 총선에 신경 쓰느라 강제징용 문제 해결의 동력이 약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징용 피해자들이 고령인 점도 문제 해결을 서두르는 이유 중 하나다. 현재 대법원으로부터 배상 판결을 받은 피해자 15명 가운데 3명만 생존해 있고, 이 중 1명은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한다. 피해 당사자가 존재해야 일본 측에 배상을 요구할 명분이 더욱 분명해지는 측면도 있다.

‘위안부 합의 파기’ 기억에 머뭇거리는 日

국회에서 지난 12일 열린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 토론회에서 일반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방청석에서는 정부 해법에 대한 반발로 고성과 항의가 이어졌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이 문제 해결에 있어 한국 정부보다 미온적이다. 2015년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가 문재인정부 때 사실상 파기된 것이 결정적으로 일본의 움직임을 가로막고 있다. 특히 현재 일본 총리인 기시다 후미오가 위안부 합의를 주도했던 인물(당시 외무상)이기에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모습이다.

한국 정부는 피해자들의 반발로 어그러졌던 위안부 합의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피해자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 ‘병존적 채무인수’ 방안을 놓고 법적 검토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일본 측에선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일본 소식통은 “징용 피해자들의 동의 없이 추진했다가 위안부 합의 때처럼 다시 엎어지면 또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합의 파기를 우려한 일본이 강제징용과 관련해 합의문조차 쓰지 않으려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미국의 압박도 위안부 합의 때만큼 크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견제를 위해 한·미·일의 강력한 협력을 원했던 미국은 위안부 합의를 중재했다가 이 합의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을 보고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선 완전히 손을 뗐다고 한다.

기시다 내각이 강제징용 합의로 엄청난 정치적 이득을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 외교 소식통은 기시다 내각의 문제 해결 의지와 관련해 “일본에선 우크라이나 사태 등 외부 위험이 크니 한·미·일 협력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한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정도”라고 전했다.

향후 한·일 관계 결정할 분기점

한국 정부는 지난 12일 공개 토론회를 계기로 ‘제3자 변제’ 방식을 공식화한 뒤 일본 측과 각론 조율에 들어갔다. 정부는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 참여와 이들의 직접적인 사과 등 성의 있는 호응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이전만 해도 이런 요구에 꿈쩍도 하지 않던 일본이 공개 토론회에서 피해자 측이 극렬하게 반발하는 모습을 본 이후 미세하게나마 태도 변화를 보인다는 평가가 외교부 안팎에서 나온다. 이에 정부는 일본 측을 압박하며 공을 넘겼다.

최근 일본 기업 측이 ‘구상권’을 언급하고 나선 게 태도 변화의 하나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한국이 무조건 해결하라’는 기존 스탠스와 달리 이제는 한국이 제시한 방안에 대해 자신들 나름의 검토를 거쳐 입장을 내놓는 등 실무적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측면에서다.


전문가들은 한·일이 내놓을 강제징용 해법이 향후 양국 관계를 결정할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위안부 합의 파기로 추락했던 양국 간 신뢰가 복원될 계기가 될지, 아니면 제2의 위안부 합의가 되고 말 것인지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강제징용 해법이 위안부 합의와 동일한 전철을 밟을지, 부족하더라도 현실적 측면에서 한·일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받을지 두 경우로 나눠질 것”이라며 “이후의 한·일 관계가 발전적 관계로 갈 것이냐, 2018년 이후 좋지 못했던 관계를 재현할 것이냐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연구위원은 또 “일본이 선심 쓰듯 수출규제를 해제하는 건 부적절하지만 그럼에도 수출규제 해제에는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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