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병원 치료 중 섬망 겪는 환자들… 의료현장 안전사고 빈번

입원 후 발생한 ‘섬망’ 환자 안전 주의경보

신체적 스트레스로 뇌 일시적 고장
기억력 떨어지고 환각·피해 망상
병원 내 매년 낙상·자해 등 사고
섬망환자 사고 실태조사 필요성


게티이미지

폐암으로 입원 치료를 받던 70대 남성 A씨는 흉기로 자신의 배와 양쪽 손을 자해하는 모습이 간병인에게 발견돼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A씨는 평소에도 시간이나 장소, 방향 등을 혼란스러워하고 간혹 난폭한 행동을 보여 주변 사람을 놀라게 했다. 폐렴으로 입원한 50대 여성 B씨는 어느날 새벽 간병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혼자 병상 난간을 넘어오다가 떨어져 바닥에 머리를 부딪히는 부상을 당했다. B씨는 다리감각 이상과 수면장애로 약을 처방받아 함께 복용하던 중이었다.

60대 남성인 C씨는 대장염 치료 중 병실 창문을 출입문으로 착각, 3층에서 뛰어내렸다가 팔다리 타박상과 허리뼈 골절상을 입었다. 장폐색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던 90대 남성 D씨는 무의식 중에 손으로 소변줄(도뇨관)을 잡아당겨 빼는 바람에 출혈이 발생해 하마터면 큰 일 날뻔했다.

이들은 모두 병원에서 치료 중 갑작스럽게 발생한 신경·정신병적 징후인 ‘섬망’으로 환자 자신은 물론 주변인에게까지 위해를 끼친 실제 사례들이다.

섬망은 수술이나 신경학적 질병, 감염, 약물 복용, 장기 입원, 탈수·영양부족 등 신체적 스트레스로 인해 뇌가 일시적으로 고장나는 현상이다. 주의력과 기억력, 판단력, 언어능력 등의 장애를 겪을 수 있고 헛것을 보거나 엉뚱한 말을 하는 등의 환각 증상도 관찰된다. 각성-수면 주기의 문제가 생겨 밤낮이 바뀌거나 밤에 잘 못자는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감정 기복이 심해지거나 비정상적 정신운동(흥분·초조·예민해지거나 부산스러운 행동 혹은 반대로 둔하고 처지면서 반응이 느려짐)이 나타날 수 있다.

최근 종방된 TV드라마에서 주인공인 재벌집 회장이 교통사고 후 발생한 섬망 증상을 리얼하게 연기해 대중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그는 극중에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지금이 언제인지, 마주 선 상대가 누구인지 잊은 채 환각을 보고 환각 속 존재가 자신을 해치려한다는 피해망상을 겪는 걸로 그려졌다. 문제는 섬망이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것 보다 더 심각한 결과, 즉 낙상(골절)이나 자해·자살, 상해, 사망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보건복지부 산하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중앙환자안전센터는 지난달 중순 입원 후 발생한 섬망에 대해 환자 안전 주의경보를 발령했다.


30일 중앙환자안전센터에 따르면 섬망 관련 환자안전사고 신고는 최근 3년간 479건이나 됐다. 해마다 평균 150건 넘게 발생한 것이다. 80세 이상(200건) 70대(152건) 60대(63건) 50대(42건) 40대(14건) 30대(4건) 20대(1건) 순이었다. 사고 종류별로는 낙상(375건)이 가장 많았고 산소호흡줄·소변줄·카테터 등 도관 빼기(34건) 약물 과다복용(13건) 상해(12건) 자해·자살 시도(9건) 폭력·성폭력·난동(7건) 등이 뒤를 이었다. 의료기관별로는 종합병원 59.5%(285건) 상급종합병원 20%(96건) 요양병원 12.3%(59건) 병원 6.7%(32건) 정신병원 1.5%(7건) 였다.


중앙환자안전센터는 2016년 환자안전법 시행 후 보고학습시스템(KOPS)을 통해 의료기관에서 발생한 각종 안전사고를 신고받고 있다. 센터 관계자는 “연간 1만5000여건의 환자안전사고 신고 중 섬망 관련은 0.1% 정도지만 의료 현장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어 환자안전학회 등 전문가그룹의 권고를 받아 환자 주의보를 내렸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코로나19 유행 동안 가족 면회나 간병이 제한되는 등 환자에게 안정적 환경이 제공되지 못해 섬망 관리에 틈이 생겼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섬망은 가족 등 익숙한 환경이 아닐 경우 더 자주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다만 의료기관의 자율 보고 방식으로 운영되는 만큼 국내 전체 환자의 섬망 사고 발생 현황을 반영하는 건 아니란게 센터 설명이다. 반대로 말하면 보고되지 않은 병원 내 섬망 사고가 훨씬 더 많을 수 있다는 얘기다.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혜연 교수는 “섬망은 과소활동형, 과다활동형, 혼합형 등 3가지가 있는데 돌아다니고 소리지르는 등 과다활동형과 혼합형은 눈에 잘 띄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하지만 하루 중 대부분을 눈 감고 처져 있으며 말을 걸어도 자려고만 하는 등 과소활동형은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발견이 어렵다. 박 교수는 “수술실이나 중환자실, 일반 입원실에서 섬망이 의심돼 협진 의뢰되는 환자가 하루 10~20명씩 된다. 의뢰되지 않은 섬망 발생자까지 포함하면 실제론 더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병원 내 섬망 안전사고 발생 현황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섬망 질병코드(F05)로 진료받은 환자는 2017년 8267명에서 2021년 9750명으로 꾸준히 증가 추세다. 다만 섬망 질병코드는 일선 현장에서 누락되는 경우가 많아 실제 보다 유병률이 낮게 나오는 문제가 있다. 중앙환자안전센터 관계자는 “2020년 1월 환자안전법이 개정돼 5년마다 병원 내 환자안전사고 실태 조사를 벌일 수 있게 됐다”며 “내년에 의무기록 등을 통해 섬망 사고 실태 조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실태조사에선 의료기관별로 섬망 예방·관리 프로그램 마련 여부, 도입됐다면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도 면밀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섬망이 발생하면 정신건강의학과 협진이 필수적인데, 규모가 작은 병원이나 요양병원 등은 정신건강의학과가 개설돼 있지 않거나 모니터링 전담 간호사, 가족·간병인 교육 등 섬망 관리 시스템이 미흡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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