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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 김장하 어르신께

정승훈 디지털뉴스센터장


‘[무삭제] #어른김장하 1부…’라는 제목이 붙은 어르신의 영상을 처음 봤을 때는 닮고 싶은데, 닮을 수 없는 분이라고 느꼈습니다. 자동차 없이 살고 있다는 점 그리고 야구 보는 걸 좋아한다는 것 외엔 어떤 공통점도 찾기 어려웠으니까요. 어르신의 삶을 취재한 김주완 기자가 처음 어르신에 대해 받았던 인상처럼 그저 본인의 직에 충실했고, 돈을 많이 버셨고 그리고 그 돈을 의미 있게 쓰셨구나 생각했습니다.

영상에는 어르신의 장학금을 받은 뒤 열심히 공부해서 이른바 ‘성공했다’고 평가받을 만한 지위에 있는 분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어르신을 기억하면서 울컥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감사 인사를 하려는 그에게 어르신은 “이 사회에 있는 것을 너에게 주었을 뿐이니 혹시 갚아야 된다고 생각하면 이 사회에 갚아라”라고 하셨다지요.

권재열 충남대 의대 교수, ‘예쁜 꼬마선충’ 전문가 이준호 서울대 자연과학대 교수, 우종원 일본 사이타마대 경제학부 교수도 나왔습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어르신께 도움을 받았지만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으셔서 위축되지 않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영상을 두 번째 볼 때는 다른 분의 얘기가 더 잘 들렸습니다. 어르신이 재수를 시켜줘서 대학을 갔다는 조해정 부산대 교양학부 교수의 눈물 짓는 모습에는 저도 찡하더군요. 조 교수는 “제 삶에서 가장 큰 지지를 받았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인물이 못 돼서 죄송하다는 이에게는 “내가 그런 것을 바란 게 아니었어.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다”라고 하셨지요.

‘돈이 큰 부분이 아니었구나,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을 어르신은 주고 계셨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박영석 대표가 등장했습니다. 어르신께 돈을 빌리러 갔다가 ‘정말 미안한데 빌려줄 수 없네’라는 말씀을 들었다지요. 돈을 빌리지 못했는데도 박 대표는 ‘용기 잃지 말고 한 번 열심히 살아보라’는 어르신 말씀에 힘이 났다고 하더군요. 돈보다 더 큰 걸 받았다는 박 대표가 받은 게 무엇인지 아둔한 저로서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저 그의 얘기를 끝까지 묵묵하게 들어주신 게 힘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제게 무언가를 얘기하려는 이가 있으면 마음으로 잘 들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며 “남은 세월은 정말 부끄럽지 않도록 살도록 노력하겠다”는 어르신. 감투 하나 쓰려는 거 아니냐, 출신 배경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아도 변명하지 않고, 화를 내지도 않고 참고 견뎠다는 어르신. “돈 있다고 말이야 돈X랄하고 다녀? (당신이) 빨갱이들이 설치는 세상을 만들었으니 국가에 반성문 써서 제출해. 빨갱이 짓해서 미안하다고….” 어르신의 휴대전화를 통해 전해지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서는 제가 죄송해서 몸둘 바를 모르겠더군요. 하지만 어르신, 그동안 쭉 그러셨던 것처럼 앞으로도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 그렇게 걸어가주시기를 응원합니다.

영상 속에서 어르신이 가장 환한 표정으로 열렬하게 말씀하시던 순간은 고 최동원 선수 얘기를 할 때였습니다. 야구 얘기를 하니 단 한 가지 어르신과 닮고 싶지 않은 점도 떠오릅니다. 저는 아직 NC로 갈아타지 않았고, 앞으로도 롯데가 우승할 때까지는 갈아타지 않을 겁니다. 어르신, 건강관리 잘하십시오.

정승훈 디지털뉴스센터장 s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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