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골목에 기름 뿌려”… 의원들 폰에도 퍼지는 ‘독버섯’

[한국정치, ‘3대 늪’에서 벗어나자] ⑥ 가짜뉴스


가짜뉴스는 한국 정치의 대표적 암이다. 가짜뉴스들은 카카오톡과 텔레그램 등 SNS를 통해 확산된다. 우리 사회에서 음모론이 판치는 배경이다. 양극단의 지지자들은 가짜뉴스를 신봉하면서 정상적인 정보의 유통과 토론을 방해한다.

국회의원들도 쏟아지는 가짜뉴스에 신음하는 것이 현실이다. 국민일보는 여야 두 초선의원의 동의를 받아 이들이 각각 속해 있는 단톡방 4개를 선정해 지난 5일부터 11일까지 일주일 동안 단톡방에 올라온 가짜뉴스들을 분석했다.

이 기간 동안 가짜뉴스로 판정된 허위 사실을 담은 글을 국민의힘 초선 A의원은 64건, 더불어민주당 초선 B의원은 81건을 각각 전달받았다. 분석 범주에 넣지 않은 다른 단톡방에도 가짜뉴스들이 올라오는 점을 감안하면 국회의원들이 접하는 가짜뉴스의 규모는 훨씬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일보 취재에 도움을 준 A·B의원은 익명을 요구했다.

여당 의원이 받은 가짜뉴스들

지난 7일 국민의힘 초선 A의원의 휴대전화 ‘단톡방’에 ‘이태원 사고 새로운 뉴스’라는 제목의 속칭 ‘받은 글’이 올라왔다. 이 단톡방은 A의원을 포함해 국민의힘 당원과 A의원 지지자 등 400여명이 모여 현안을 소통하는 단체대화방이다.

‘받은 글’의 내용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각시탈을 쓴 인물들이 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용산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 아보카도 오일과 기름을 뿌렸다는 내용이다. 인파에 막혀 움직이지 못하던 행인들이 이 기름에 미끄러지면서 대규모 참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가짜뉴스는 ‘경찰 확인’이라는 거짓 사실까지 담으면서 진실인 것처럼 속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좌익세력’들이 이태원에 모일 때 각시탈을 갖고 오라고 지시했다는 증거가 좌익세력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발견됐다는 가짜뉴스를 퍼뜨렸다. 또 각시탈을 쓴 인물 중 한 명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성남시장 시절 시장 집무실에서 같이 사진을 찍었던 조직폭력배로 보인다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음모론에 기반한 이 ‘받은 글’은 전형적인 가짜뉴스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지난 13일 이태원 참사 최종수사결과를 브리핑하면서 실제로 각시탈을 썼던 남성 2명을 조사했지만 별다른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A의원은 30일 “이런 말도 안 되는 황당한 내용의 ‘받은 글’, 지라시, 유튜브 링크들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은 올라오는 것 같다”며 “이제 더는 놀랍지도 않다”고 혀를 내둘렀다.

야당 의원이 받은 가짜뉴스들

야당 의원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초선 B의원이 들어가 있는 한 단톡방에는 경찰 조사에서 이미 허위로 밝혀진 ‘청담동 술자리 의혹’과 관련된 가짜뉴스가 올라왔다. ‘청담동 술자리 의혹’이란 지난해 7월 19일 자정을 넘긴 시간까지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그리고 대형 로펌 변호사 수십명이 술자리를 가졌다는 주장을 지칭한다.

B의원이 받은 가짜뉴스는 술자리 장소가 당초 알려진 청담동 술집이 아니라 다른 술집이며, 경찰이 잘못된 장소를 압수수색하며 헛다리를 짚었다는 허위 내용을 담고 있었다. 역시 사실임을 가장하기 위해 술자리 장소를 논현동의 다른 술집으로 특정한 뒤 해당 건물주의 신상을 공개하는 글도 올라왔다.

그러나 이는 경찰 조사 내용과 완전히 어긋난다. ‘청담동 술자리 의혹’의 발원지였던 첼리스트는 지난해 11월 23일 경찰 조사에서 “전 남자친구를 속이기 위해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진술했다.

B의원이 받은 가짜뉴스 중에는 윤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허위 사실을 담은 가짜뉴스들이 많았다. B의원은 “단톡방에 가짜뉴스들이 하도 많아 요새는 메시지가 와도 아예 읽어보지도 않는다”며 “읽지 않은 메시지가 몇십개씩 쌓이면 한번 들어갔다 나와서 ‘안 읽음’ 숫자 표시만 지우고 만다”고 말했다.


유튜브 링크 형태로 가장 많이 퍼져

여야 두 의원에게 쏟아진 가짜뉴스의 유통 형태는 크게 네 가지 방식으로 구분됐다. 가장 많은 형태는 유튜브를 링크하는 방식이다. 가짜뉴스를 담은 유튜브 링크를 그대로 전송하거나 유튜브 방송 내용을 자의적으로 과장해 그 유튜브 링크와 허위 사실을 동시에 전하는 경우가 63건으로 가장 많았다. 유력 언론들과 달리 ‘팩트 체크’를 제대로 거치지 않는 유튜브 방송이 가짜뉴스의 발원지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받은 글’ 형식은 38건, ‘사진짤’ 등 전단지 형식은 27건, 기타 정치적 편향성을 띤 온라인 커뮤니티를 링크한 경우가 17건으로 각각 그 뒤를 이었다.

상대 정치 진영을 공격하기 위해

두 의원이 받은 가짜뉴스들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 상대 정치 진영을 비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가짜뉴스가 전체 145건 중 63건으로 가장 많았다.

대표적으로 A의원이 ‘받은 글’ 중에는 21대 민주당 국회의원 78명과 무소속 의원 1명이 ‘교회폐지법’을 발의했다가 철회했다며 다음 총선에서 해당 의원들에게는 표를 줘서는 안 된다는 가짜뉴스가 있었다. 이는 이미 지난해 9월쯤 정치권에 퍼졌던 허위 사실이다.

79명의 명단에 포함돼 항의 전화로 곤욕을 치렀던 이해식 민주당 의원은 당시 페이스북에 “상식적으로 어떤 정치인이 교회를 없애자는 법안을 발의하겠느냐. 설사 그와 유사한 법안이 있다 쳐도 어떤 국회의원이 그런 법안에 찬성하겠느냐”며 황당해한 적이 있다. 특히 이 가짜뉴스가 4개월이 지난 현시점에도 ‘항의가 많아지자 발의자가 스스로 법안을 철회했다’는 내용으로 모양새를 바꿔 정치권을 배회하고 있다.

두 의원이 받은 가짜뉴스 내용 분석 결과 근거 없는 음모론(61건)이 두 번째로 많았다. 지난해 사망자와 암 환자가 급증한 이유가 ‘유전자 편집’ 주사인 코로나19 백신 주사를 맞아서 그렇다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여야를 초월해 계파 갈등을 야기하는 목적의 글은 18건, 출처를 신뢰할 수 없는 설문조사도 3건이 각각 발견됐다.

“일반인들, 자칫 현혹될까 걱정”

B의원은 “의원들이야 비교적 정확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가짜뉴스들을 걸러내는 데 문제가 없다”면서 “정치에 관심은 많지만 일일이 정보의 진위를 확인하기에는 너무 바쁜 일반인들이 이렇게 무분별하게 유통되는 가짜뉴스에 자칫 현혹되지는 않을까 우려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두 의원은 하루에도 수십 통의 가짜뉴스가 전달되는 상황에 대해 피로감을 토로했다. A의원은 “의원들은 휴대전화 번호가 공개돼 있어서 허락도 없이 온갖 단톡방에 초대를 받는다”며 “극우 성향을 띤 가짜뉴스를 많이 접하게 되는데, 내용이 너무 터무니없어 ‘괴기 소설’을 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B의원 역시 “SNS에 쏟아지는 가짜뉴스들은 사회적 공해”라며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간할 틈도 없이 쏟아지니 피로할 따름”이라고 전했다.

가짜뉴스가 무분별하게 유통되면서 관련 사건도 증가하는 추세다. 정우택 국회 부의장실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사이버 명예훼손 및 모욕 건수는 2014년 8880건에서 2022년 2만9258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정당팀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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