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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같아요 지옥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같아요 말투 너무 싫습니다.’ 얼마 전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를 달군 게시물 제목이다. 요새 젊은이들이 방송이든 현실이든 ‘~같아요’라는 말로 끝내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었다. 특정 사안의 원인을 정확히 모를 때 쓰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슬픈 것 같아요’라든지 ‘좋은 것 같아요’처럼 감정을 표현하는 곳에서조차 쓰다니 정말 싫다는 내용이었다. 글쓴이는 “슬프면 슬프다, 좋으면 좋다는 식으로 자신의 마음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다니. 내가 꼰대라서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국어교육이 잘못된 건지 알 수 없다”고 적었다.

게시물은 커뮤니티에 오른 지 하루 만에 1만5000여회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그사이 2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간혹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와 같은 레전드 가요 제목을 쓴 댓글이 올라오거나 ‘맞는 말 같아요’ ‘아닌 것 같아요’라는 식의 언어유희가 펼쳐지기도 했는데 그중엔 곱씹어볼 만한 내용이 많았다.

같아요를 쓰는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관용 없는 한국 사회 탓이라는 분석이 눈길을 끌었다. 작디작은 모니터나 스마트폰 화면으로만 세상을 접하니 한국인의 마음이 점점 옹졸해지는 걸까. 연예인이든 일반인이든 가리지 않고 그들의 작은 실수만을 기다리며 악플로 총공격하는 마녀사냥의 시대가 됐으니 눈치 보며 살지 않을 수 없다. ‘오늘 한 놈만 걸려라’는 식으로 눈에 쌍심지를 켜고 사는 프로불편러와 마녀사냥꾼들이 즐비한 한국 사회에선 같아요 말투야말로 자신을 지키는 최후의 방어선이 됐다는 설명이다.

며칠 전엔 세계적 배구 스타인 김연경 선수가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로 나선 김기현 의원과 만나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사진을 찍었다가 곤욕을 치렀다. 야권을 지지하는 네티즌들이 김 선수의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식빵 언니 알고 보니 2찍(여당 지지자를 낮춰 부르는 말)이네, 소름. 식빵이나 먹어라” 등의 악플을 달았다. 선 넘은 댓글 공격이 이어지자 김 의원이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국민은 아무나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면서 “비정상 사회에서 벗어나 정상 사회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카타르월드컵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꽃미남 축구 스타’ 조규성 선수도 월드컵 이후 청와대 영빈관 만찬에서 김건희 여사와 ‘셀카’를 찍었다가 공격 대상이 됐다. 조 선수의 SNS에는 “김건희랑 사진 찍고 싶니? ㅉㅉ 생각 좀 하고 살자” 등의 비난 댓글이 쇄도했다. 따봉을 날리거나 셀카를 찍는 행동만으로도 자칫 반동분자로 찍혀 집단 공격을 당하듯 서로를 감시하고 물어뜯는 사회가 됐다. 그러니 같아요 말투로 무장한 무색무취의 존재만이 살아남는다.

한국이 같아요 지옥이 된 건 정치인 등 사회 지도층의 유체이탈 화법 탓이라는 주장도 있다. 책임져야 할 일이 발생했는데도 자신과 상관없는 일인 양 이야기한다는 것인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체이탈 화법으로 유명했다. 그는 주어와 술어가 뒤죽박죽 맞지 않고 만연체와 관형어로 가득한 화법을 구사했다. 같은 발언인데도 언론 보도가 서로 다른 촌극까지 빚어질 정도였다.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 앞에서 사고 원인 규명을 약속하면서 “오늘 얘기한 게 지켜지지 않으면 여기 있는 사람 다 책임지고 물러나야 합니다”라며 책임을 참모에게 돌려 국민 속을 끓이기도 했다.

8년이 지나 다시 이태원 압사 사고가 벌어졌다. 경찰과 행정당국의 통제 부족으로 발생한 사고인데도 ‘내 탓이오’라며 나서서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안전불감증도 유체이탈 화법도 제자리걸음이니 답답할 따름이다.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kitt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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