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지 막막해요” 홀로서기 도와줄 ‘어른’ 필요

[자립준비청년에 희망 디딤돌을]

점심을 먹고 난 이후 설거지를 하는 김씨의 뒷모습. 김천=김지훈 기자

김효정(가명·21)씨는 만 18세가 되던 해 보육원에서 나와 곧바로 취업에 성공했다. 첫 월급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보험 가입이었다. 의지할 곳이 없던 그로서는 큰 병에라도 덜컥 걸리면 돌봐줄 어른도 없이 살아갈 길이 더 막막해질 거란 걱정이 들었다고 한다. 김씨는 “보육원에서 지낼 땐 병원에 가서 내가 직접 돈을 내본 적이 없었다”며 “독립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게 된 뒤에야 ‘병원에 가면 돈을 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보험설계사를 찾아가 최고 1억원을 보장해주는 암 보장보험을 들었다. 그렇게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김씨가 가입한 보험은 ‘○○○자녀보험’이었다. 그는 “보육원에서 틀에 짜인 단체생활을 하며 자라 다양한 경험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자립 후에도 우물 안에 갇혀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1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김씨처럼 시설에서 나와 홀로서기에 나선 뒤에도 방황하거나 시행착오를 겪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자립준비청년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이들에 대한 금전적 지원은 조금씩 늘어나고 있지만 청년들이 어른으로 안착하는 데 필요한 취업 안내나 금융 교육, 심리정서적 상담 등은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립 과정에서 어려운 현실을 마주할 때 길을 묻고 의지할 수 있는 우산이 없는 것이다.

자립 2년 차인 어린이집 교사 이민주(26)씨도 늘 경제적 독립을 꿈꾸며 살지만 현실에서 실천하는 수준은 적은 월급을 최대한 아껴 조금씩 모으는 일이다. 이씨는 “시설에서 배운 경제 교육은 ‘신용카드를 쓰지 말라’는 정도였다”며 “사회에 나와 보니 신용등급을 올리기 위해선 신용카드도 적절히 사용하는 게 필요했는데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투자 등 돈을 모을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교육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정부 지원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어디에 물어봐야 할지 몰라 막막한 경우도 많다고 한다. 대학 때 장학금을 받고 취업에도 성공한 서연지(24)씨는 살 집을 구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보육원에서 나온 지 1년이 지난 그는 “집을 알아보고 부동산 계약을 하는 방법을 유튜브에서 찾아본 게 전부”라고 말했다.

자립준비청년 김모씨가 1일 경북 김천에 있는 자택에서 자신의 통장 잔액을 모바일 뱅킹 앱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 5년 동안 꾸준히 일해온 김씨는 “차곡차곡 돈을 모아가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김천=김지훈 기자

자립준비청년에게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대주택 지원제도도 있지만 신청 방법을 몰랐던 서씨는 주변 부동산중개업소에 무작정 전화를 돌렸다. “LH 임대주택 대상자인데 집을 구할 수 있느냐”고 수차례 전화한 끝에 사정을 들은 한 부동산에서 도움을 줬다. 그는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이렇게 하면 되는지’ 계속 겁이 났지만 물어볼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시설 중도 퇴소로 지원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어렵게 자구책을 찾기도 한다. 박영현(가명·26)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보육원에서 강제로 나와야 했다. 원치 않는 자립이었지만 자립정착금 500만원 이외에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 배고픔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까지 고민했던 그를 잡아준 건 중학교 선배였다. 박씨는 “감자탕집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 그래도 먹고살 수 있다”는 선배 말에 일자리를 소개받고 ‘살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거주 지원도 받지 못하고 선배 집에 얹혀살았던 영현씨는 현재 패널제작 회사에 입사해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혹시나 선배와의 관계가 끊기면 또다시 혼자 남겨질 수 있다는 걱정이 따라다닌다.

전문가들은 자립준비청년 상황에 맞는 ‘맞춤형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일대일 관리를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립지원전담요원 1명이 많게는 50명의 보호종료아동을 담당하는 상황이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물어볼 여력조차 없는 힘든 아이들이 가장 먼저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체계적 지원이 이뤄진다면 자립 초기 시점에 집중돼 있는 각종 지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는 제언도 나왔다. 정 교수는 “자립 초기에 자금을 바로 제공하는 것이 오히려 노동 의지를 꺾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며 “각자 상황이 다른 자립준비청년이 가장 어려움을 겪을 때 누군가에게 손쉽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혜성 지원보다는 당사자가 사회 일원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의지를 키워주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자립생활 5년이 된 김모(25)씨는 “나같은 상황의 친구들이 자립을 하려면 더 큰 노력과 의지가 필요한데, 후배들에게 일자리를 알아봐 주려 해도 ‘지원금만 받으며 살겠다’고 하는 이들이 많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실업급여처럼 자금을 지원해 주면 취업지원센터에서 교육을 받도록 하는 등의 구직 노력을 유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립지원청년을 위한 여러 지원책을 한번에 살펴볼 수 있는 통합정보 사이트나 애플리케이션 등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도 시급한 문제로 꼽힌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외에도 민간 영역에 다양한 지원책이 존재하지만 제대로 공유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씨는 “자립준비청년 지원에 대한 정보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어 아는 사람을 통해 알음알음 정보를 얻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는 “자립준비청년에게 돈만 준다면 그 돈이 실제 생활을 위해 제대로 쓰일 가능성이 낮다”며 “아이들이 하루에 단 2시간 만이라도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엄마’ 같은 존재를 만날 수 있다면 그만큼 위험에 노출될 위험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천=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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