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농기계 임대가 성인지 사업?… 막 갖다붙인 예산

올 성인지 예산 32조7000억 운영
취지와 거리 먼 사업 포함돼 논란

지난해 3월 진보당이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근에서 윤석열 당선인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의 ‘성인지 예산’ 운영을 놓고 실효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성평등 제고라는 취지와 무관한 사업들이 성인지 예산으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이다.

7일 정부의 ‘2023년도 성인지 예산서’에 따르면 올해 성인지 사업은 38개 중앙관서의 302개로 집계됐다. 전체 사업 규모는 32조7123억원이었다. 성인지 예산은 매년 목적을 두고 책정되는 별도의 예산이 아니라 기존 사업에서 성평등 효과를 내거나 남녀의 삶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은 예산을 분류한 것이다. 이명박정부 때인 2010년 도입됐다.


문제는 양성평등과 크게 관련이 없는 사업 예산도 성인지 예산으로 집계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338억원이 배정된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립극장 운영 사업은 성평등과 관련 없어 보이지만 성인지 사업으로 분류됐다. 정부는 이 사업을 성인지 사업으로 분류하면서 “성별을 고려한 공연 기획 및 고객 편의 서비스 제공을 통해 성별 간 균형잡힌 고객만족도를 제고하겠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올해 농림축산식품부의 농기계 임대 사업 명목으로 248억원을 배정했는데, 이 사업도 성인지 사업으로 묶였다. 농가에 농기계를 빌려주는 과정에서 여성 농업인도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199억원 규모로 책정된 경찰청의 수사부서 사무환경 개선 사업도 올해 성인지 예산에 포함됐다. 경찰서 수사부서(수사·형사과)에 방문하는 남성 혹은 여성 민원인이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성인지 사업 302개 가운데 양성평등 목표 달성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직접 목적’ 사업은 96개에 그쳤다. 나머지 206개 사업은 ‘간접 목적’ 사업으로, 성평등과 크게 관련이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현재 성인지 예산과 관련해 부처별 의무 편성 비율이나 편성 촉진을 위한 인센티브는 없다. 각 부처가 제출하는 성인지 예산안도 형식적인 수준에 그칠 뿐 아니라 제대로 된 평가 시스템도 없는 상황이다.

성인지 예산에 대한 명확한 개념 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인 지난해 2월 유세 도중 “정부가 성인지감수성 예산이란 걸 30조 썼다고 알려져 있다. 그중 일부만 떼어내도 우리가 이북(북한)의 핵 위협을 막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성인지 예산을 별도로 편성하고 있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발언이었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