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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간호사들이 죽어가고 있다”

[책과 길] 밑바닥에서
김수련 지음
글항아리, 256쪽, 1만6000원

인플레이션에 따른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영국 공공의료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의료파업에 돌입한 영국 간호사들이 지난 6일(현지시간) 버밍햄의 퀸엘리자베스 병원 바깥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이 앞세운 플래카드를 보면 간호사 문제로 '인력 부족' '저평가' '저임금'이 지적돼 있다. AP연합뉴스

“나는 김수련이다. 1991년에 태어났고, 빼어날 수(秀)에 단련할 연(鍊) 자를 쓴다. 나는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간호사다. 이것은 내가 간호사로서 7년간 겪어온 경험의 기록이다.”

‘밑바닥에서’는 이렇게 시작된다. 김수련은 간호사의 고백이자 간호 현장에 대한 보고, 병원과 의료시스템에 대한 고발이 되는 책을 쓰면서 맨 앞에 자기 이름을 걸어놓았다.


그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암병원 중환자실에서 만으로 6년 넘게 일했다. 마지막 해에는 책임간호사가 됐다. 그가 경험한 중환자실 간호사의 삶을 보자.

“수십 가지 일을 동시에 고려하느라 넋이 나가곤 했다.” “생리혈이 새고 바지까지 젖어서 다른 간호사가 발견한 적이, 심지어 그걸 안 채로도 생리대를 갈러 갈 수 없었던 적이 있다.” “어떤 때는 집에 도착하고도 울음이 그치지 않아 엄마가 봐도 운 티를 못 알아차릴 때까지 아파트 층계참에서 한두 시간씩 서성거렸다.” “쉬는 날에는 항상 누워 있었다.” “그날들에 나는 누구보다 더 강바닥 같은 죽음에 가까이 가 있었다.”

간호사는 과로, 긴장, 소진의 극한대까지 내몰린다. 수면과 식사, 휴식은 물론이고 생리 현상을 해결할 시간조차 없이 뛰어다녀야 한다. 시간과 몸, 영혼을 갈아넣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간호사들의 이런 실상은 병원 바깥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는다. 간호사들의 침묵과 체념, 그리고 사회의 무관심 때문이다.

그 밑바닥에서 김수련은 굳고 차가운 침묵의 지층을 뚫고 뜨겁고 용감한 이야기를 쏘아 올린다. 여기 간호사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나도 간신히 살아남았다고, 환자들의 생명도 위험하다고.

김수련은 간호사들이 가혹한 노동 조건에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용한 사직’으로 저항하고 있다고 전한다. 지금 한국의 간호 현장에는 훈련된 간호사가 극히 부족하다. 20대 신참 간호사가 36.5%로 다수를 이룬다. 반면 호주, 캐나다, 프랑스, 미국의 경우 간호사의 50∼60%가 35∼50세 사이에 분포해 있다. “한국의 임상 간호 현장은 교육을 받고 입사한 젊은 간호사들이 고작 몇 달에서 몇 년을 견디고 아수라장을 피해 도망치는 소모전의 연속이다.”

그는 간호사를 무너지게 하고, 간호 현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건 인력 부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사실은 이것보다 훨씬 나을 수 있었다. 단순하다. 일이 덜 바쁘고 덜 힘들면 된다… 그냥 간호사를 조금 더 충원하면 된다. 그럴 수 있는 법을 만들 기회가 수십 번 있었다. 그걸 놓쳐서 지금 간호사의 절반은 일을 그만두고 나머지 절반은 반인반수가 된다.”

간호사 대 환자 비율을 보면, OECD 평균은 1인당 6∼8명이다. 미국은 간호사 한 명이 5.3명의 환자를 본다. 한국의 경우, 종합병원은 16.3명, 일반 병원은 43.6명을 본다. 이 숫자에는 한국 간호사들의 노동강도와 환자들의 목숨이 달려있다. 간호사 한 명이 담당하는 환자가 한 명 증가할 때마다 환자의 사망률은 7% 증가한다.

김수련은 “간호사가 너무 모자라서, 훈련되어 있지 않아서, 아무리 애써도, 매일 녹초가 되도록 진을 빼도 도무지 닿을 수가 없어서 속절없이 환자들을 잃어버렸다”고, “환자를 지키기 위해 하는 투쟁이 우리가 매일같이 하는 일이라면, 우리는 가장 먼저 인력을 충원해달라고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우리는 비겁했다”고 고백한다. 또 환자 가족들을 향해 “그들의 죽음이 석연치 못했다는 것, 다른 환경에서는 어떤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래서 그 죽음들이 존중받지 못한 죽음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고 쓴다.

국문과를 졸업한 김수련은 ‘한없이 실용적이며’ ‘옳은’ 일을 찾아 간호사로 진로를 바꿨다고 한다. 그는 책에서도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은 환자를 지키는 것”이고 “우리는 환자 옆에 있는 사람”이라며 간호사의 보람을 표현한다. “우리는 보잘것없으나 영웅적이고, 비참하나 단단하고, 괴로운 순간에도 다정하다.”

‘밑바닥에서’는 사실적이면서도 뜨겁다. 간호사의 언어가 부재한 상황에서 ‘간호사 작가’의 등장을 알리는 책이기도 하다. 김수련은 간호사 당사자로서 간호사 서사를 새로 구축해냈다. ‘백의의 천사’가 아닌 여성 노동자로서의 간호사를 보여준다. 김수련이 이 책에서 말하는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간호사 대 환자 비율을 보장해 달라”는 주장은 1970년 평화시장 봉제공장 노동자 전태일의 외침을 떠오르게 한다.

김수련은 2020년 3월 한 달 동안 코로나19 파견 근무로 대구동산병원에서 일했다. 서울로 돌아와 자가격리 기간에 페이스북에 써서 올린 파견 근무 후기가 화제를 모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라는 책의 공저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또 노조 대의원으로,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운영위원으로 간호사들의 목소리를 내왔다.

그는 현재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파견 인력으로 미파견 기간 중 미국 뉴욕 시립병원 외상 중환자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 역시 완전히 소진돼 한국 병원을 떠난 것이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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