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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전담법인이 개척한 산업 ‘가해자 감형 컨설팅’

[책과 길] 시장으로 간 성폭력
김보화 지음
휴머니스트, 392쪽, 2만1000원


“성폭력의 법적 해결 과정은 성폭력이 발생하는 기반인 성별권력과 성폭력을 용인하고 사소화하는 남성중심적 사회에 대한 투쟁의 과정이다. 그러나 수사·재판 과정에서 가해자에게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법적 정보의 판매와 전문성의 상품화는 성폭력이라는 정치 투쟁의 장 자체를 자본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문제로 전환시킨다.”

‘시장으로 간 성폭력’은 성폭력이 어떻게 시장화됐고 성범죄 전담 법인은 어떤 방식으로 가해자의 감형 사유를 만드는지, 가해자는 어떻게 법시장의 합리적 소비자가 됐는지 이야기한다.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로 젠더폭력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저자 김보화의 박사학위논문을 수정·보완한 결과물이다.

성범죄 가해자 전담법인은 성범죄 양형의 감경요소 중 ‘진지한 반성’에 주목하고 여러 방법을 고안해 낸다. 반성을 명목으로 사회봉사단체나 여성단체에 후원금을 기부한 후 영수증을 법원에 제출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가해자 지원 시장’은 죄를 지은 사람을 제대로 처벌할 수 없게 만들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역고소를 기획한다.

이같은 전략이 성범죄에 대한 법적 판단 기준을 바꾸는 동안 피해자는 피해를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친다. 성별권력 문제는 외면 당하고, 법은 피해자를 의심한다. 충분히 주체성이 있으면서 왜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않았는지,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았으면서 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는지 묻는다. 피해자들은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고통을 내세우고 ‘피해자다운 모습’만을 드러내야 한다.

김보화 소장은 책의 머리말에서 “스스로를 성범죄 전담법인이라 자처하는 법인들의 홈페이지에는 해당 법인의 변호사를 선임해 성폭력 가해자가 무죄를 받거나 낮은 형량을 받았다는 후기가 ‘성공 사례’라는 이름으로 게시되어 있었고, 일부 법인은 자신들을 ‘성폭력 상담소’라고 소개하기까지 했다”며 “법조 시장에서 성폭력 가해자 변호는 그 어느 범죄보다 돈이 되는 분야로 선호되고 있었다”고 고발했다.

저자는 이화여대 여성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폭력 피해자의 경험이 타자화되는 과정, 성폭력 가해자가 행위를 정당화하고 스스로를 피해자화하는 논리, 성폭력 사건 해결의 의미와 조건 등을 연구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에서 활동했다. ‘누가 여성을 죽이는가’, ‘페미니즘 교실’, ‘스스로 해일이 된 여자들’ 등의 책을 함께 썼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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