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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국방장관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부인

라동철 논설위원


전쟁터에서는 인간성이 말살되는 비인도적인 일들이 다반사로 발생한다. 군인은 물론이고 여성, 어린이, 노인 등 전투와 관련이 없는 민간인들까지도 숱하게 희생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전쟁에도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국제법으로 자리 잡은 제네바 협약이 그것이다.

제네바 협약은 4개 협약으로 이뤄져 있다. 제1협약은 육상전에서 군인 부상자 및 병자의 상태 개선에 대해 규정한 협약이다. 훗날 제1회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앙리 뒤낭이 주창해 1864년 채택된 협약으로 국제적십자기구 설립으로 이어졌다. 해상에서의 군인의 인도적 대우를 규정한 제2협약은 1906년, 포로의 대우에 관한 제3협약은 1929년 제정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9년 이들 3개 협약이 갱신됐고, 전시의 민간인 보호를 명시한 제4협약이 추가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4협약은 무력 충돌 시 적대행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민간인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금지하고 있다.

베트남전 파병 한국군의 퐁니 마을 민간인 학살 의혹을 사실로 인정하고 정부에 배상하라고 한 지난 7일 법원의 1심 판결은 협약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재판부는 당시 참전 군인과 마을 민병대원의 증언, 그 밖의 원고 측이 제시한 증거들을 받아들여 학살이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정부는 책임을 부인해 온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17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우리 장병들에 의해 베트남 민간인이 학살된 것은 전혀 없다’고 정면 반박했다.

정부가 항소할 가능성이 높은데, 중요한 것은 실체적 진실이다.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와 배상 등 치유에 나서는 게 보편적 인권을 강조해 온 대한민국에 걸맞은 자세다. 당시 중앙정보부가 작전에 참여한 군인들을 조사한 자료를 공개하고 사실 파악 등 진상 규명에 적극 협조해야 마땅하다. 참전 단체 등을 의식해 회피에 급급한다면 과거사 책임을 부인하는 일본 극우정부와 뭐가 다르겠나.

라동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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