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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 기자의 안녕, 나사로] 챗GPT, 네가 공감을 알아?

딸아이 머리를 묶다가 다툰 날…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이 감격스러운 건 그가 전지전능해서가 아니라 무거운 짐을 진 자녀에게 위로부터 주시기 때문이다. 해결이 아니라 공감이 우선이다. 픽사베이 제공

3000억개 이상의 자료를 학습해 답변을 내놓는 챗GPT가 전 세계를 들썩이고 있다. 가히 혁명적이라 불릴만한 도구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열광했다. 가공할 만큼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도화된 전문영역 관련 질문엔 몇 초 만에 유려한 문장으로 답을 제시하고 번역, 프로그래밍, 논문 작성, 소설 창작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작업을 수행하는 경이로움을 선보인다.

문득 부모로서 육아하며 맞닥뜨리는 숱한 난관에 챗GPT가 어떤 솔루션을 제시할지 궁금했다.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빠가 묶어 준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딸이 유치원 등원을 거부했던 날이다. 아이는 속상해서, 아빠는 서운해서 서로를 향해 소리를 질렀더랬다. 그날의 장면을 묘사하며 어떻게 상황을 해결하면 좋을지 채팅을 전송했다.

10초쯤 흘렀을까. 채팅창에 거침없이 답변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놀라웠다. 챗GPT는 아이로선 불안하고 두려운 상황일 수 있으니 이를 수용해주는 게 중요하다는 조언으로 답을 시작했다. 이어 상황을 부드럽게 전환하기 위해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꺼내 마음을 추스른 뒤 머리를 묶는 대신 모자를 써보게 하거나 캐릭터가 그려진 머리띠를 활용해보는 대안을 제시했다. 감정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아이가 소리를 질러 상황이 경직되는 순간, 부모로서 즉각 감정적으로 대응할 게 아니라 아이의 불안에 집중할 수 있도록 격앙된 감정을 잠시 내려놓을 것을 주문했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초보맘도 할 수 있는 아이 머리 묶기’ ‘5분 안에 할 수 있는 쉬운 머리 묶기’ 등 유튜브 콘텐츠 링크까지 덧붙였다.

채소를 잘 먹지 않는 아이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자 채소를 잘게 썰어 넣은 계란찜의 레시피와 영양학적 소견을 보내왔다. 또래보다 작은 키 때문에 고민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꺼내 놓을 땐, 키는 사람이 가진 수많은 특징 중 하나이기에 이로 인해 자신에 대한 평가가 절하되는 것의 불합리성을 지적했다. 아이가 긍정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방법도 제언했다.

질문의 밀도가 높고 섬세할수록 답변의 차원도 높아졌다. 갖가지 고민을 주제로 대화를 거듭하며 챗GPT의 탁월한 능력에 감탄하는 사이 문득 공허함이 느껴졌다. 이상했다. 어디서 기인한 공허함인지 궁금해졌다. 수십 개의 채팅창을 다시 살펴보며 챗GPT와 나눈 대화를 유심히 들여다 봤다.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핵심은 ‘공감’이었다. 채팅창에 궁금증과 고민을 입력했을 때 챗GPT는 완벽에 가까운 해답을 출력해냈다. 솔루션 제공 측면에선 최고의 능력자였다. 하지만 공감 측면에선 그야말로 ‘꽝’이었다. 마치 어렵사리 고민을 털어놓고 공감을 기대하는 여자가, 문제점을 판단하고 해결책을 늘어놓는 남자친구를 바라보며 되려 한숨 쉬는 상황처럼 말이다.

성경 속 예수는 능력자였다. 그는 극심한 나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 중풍 때문에 자기 힘으로 걷지 못하는 사람 등 삶 자체가 문제투성이인 약자들을 찾아가 치유했다. 사람들은 예수를 ‘해결사’라 칭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바로 그의 시선이다.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예수의 시선이 온전한 치유를 향한 첫걸음이었으며 능력이 임하는 첫 단추였다.

다시 챗GPT에게 물었다. “넌 정말 뛰어난 AI 챗봇이야. 내가 궁금해하는 문제에 거의 완벽한 답을 제시해줘. 정말 대단해. 그런데 너와 대화하면 할수록 공허함을 느껴. 왜일까?”

이내 답이 돌아왔다. “인간과의 대화는 서로의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뤄지지만 AI 챗봇과의 대화는 텍스트와 명령어에 기반한 통신으로 제한돼 있습니다. 따라서 불완전하거나 불만족스러운 감정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나사로’란 이름엔 ‘하나님의 도우심’이란 뜻이 담겨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육아뿐 아니라 삶의 순간순간마다 크리스천들은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자신을 내려놓으며 도우심을 구한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위로에 더해 쉼까지 약속하며 예비해 둔 솔루션을 제공한다. 3000억개 수준이 아니라 셀 수조차 없는 무한한 사랑을 기반으로 말이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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