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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 학폭도 “법대로 하자”는 부모들

나성원 사회부 기자


2013년 법원을 출입할 때 학교폭력(학폭) 행정소송을 낸 고등학생 기사를 썼다가 학생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그 학생은 고교 친구를 따돌렸다가 전학 처분을 받은 후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허위 기사를 당장 삭제하지 않으면 민형사 소송을 걸겠다’던 중년 가장의 점잖지만 단호했던 목소리가 기억난다. 법원 판결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마음이었으리라.

부모라면 누구나 내 자녀가 소중하다. 하지만 자녀 편만 드는 게 교육적으로 옳은 선택은 아닐 수 있다. 2012년 개봉한 외국 코미디 영화 ‘대학살의 신’에선 아이들 문제가 어른 싸움으로 번지는 내용이 나온다. 영화는 초등학생 친구들이 다투다 한 아이가 친구의 앞니 두 개를 부러뜨리면서 시작된다.

양쪽 집안 부모들은 아이들이 다툰 원인 등을 얘기하다 결국 감정이 뒤틀리고 ‘진흙탕 싸움’을 벌인다. 애들 다툼이 부모들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는 국내 학교폭력심의위원회(학폭위)의 모습과 묘하게 닮았다. 정작 영화는 아이들이 공터에서 노는 장면으로 끝난다. 국내 학폭위에서도 피해 학생이 ‘친구와 이미 화해해 학폭위에 오기 싫었다’며 눈물로 호소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2004년 처음 도입된 학폭위는 사실상 학생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법정’이 됐다. 교사의 훈육은 학폭위 처분과 학교생활기록부 기재로 대체됐다. 학폭위 처분 학생부 기재는 2012년 학폭 대응을 강화하겠다며 도입됐다. 학폭 사건이 발생하면 온라인 공간 여론은 ‘대입·취업에도 불이익을 줘야 한다’며 들끓는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최근 “학폭 이력 정시 반영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대입·취업 불이익은 학벌지상주의 사회 속 학생들에게는 ‘법정 최고형’과 다를 바 없다.

한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는 수준의 학폭은 엄벌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뉴스에 나오는 잔인한 학폭만 발생하진 않는다. 초등학교 저학년들 사이에 ‘너랑 놀기 싫다’고 하거나, 별명을 부르다 말다툼 끝에 밀치는 등 교육적 해결이 가능한 사안도 부모 요청으로 학폭위가 열리곤 한다. 학폭위는 변호사 등 법률가나 경찰, 학부모 등으로 구성된다. 학폭위가 열리면 학생들을 제일 잘 아는 담임교사는 사안에서 배제된다. 가해 학생 부모는 ‘상대방이 먼저 괴롭혔다’며 ‘맞학폭’을 제기한다. 세밀한 교육적 해결이 필요한 학폭 문제에서 정작 교육이 실종되는 ‘사법화’가 벌어진다.

법조계에선 아동학대, 성범죄 사건에서 형량 하한을 무조건 높이는 대책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이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다. 유죄가 선고되면 사실상 인생이 끝장나는 가해자는 절대 범행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 이것이 오히려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범죄자를 무조건 강력 처벌하면 행복한 세상이 찾아올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학폭 대책이 엄벌주의 일변도로 흐른다면 친구들 사이에 조금만 다툼이 벌어져도 학생들은 절대 상대방에게 사과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부모들마저 자식들을 그렇게 교육할 수 있다.

학교 현장에서 학폭을 예방할 방법이 무엇인지, 교사의 학폭 사건 전문성과 권한을 더 키울 방법은 없는지 세밀한 고민이 필요하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 교사에게 학폭 사건 종결 권한을 부여하거나, 경미한 사안의 경우 학폭위 전 교내 조정 기간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다. 교사가 학폭 문제에서 아이들을 강력하게 선도할 수 있도록 교권 회복도 뒤따라야 한다. 폭력과 욕설, 타인의 권리 침해에 무감각한 사회 전반의 분위기도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학폭 문제에 있어 ‘내 자녀에게 조금의 불이익도 참을 수 없다’는 부모의 자세도 변할 필요가 있다. 실제 학교 현장에선 학생들 다툼에 교사가 가정 내 지도사항을 전달해도 “선생님이 아이에 대해 얼마나 잘 아느냐”며 부모들이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법대로 하자”는 부모들이 자녀들 가슴에 멍을 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봐야 한다.

나성원 사회부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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