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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비콥, 그리고 착한 회사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전 재산을 쾌척한 기업인이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내와 두 자녀 등 가족이 소유한 회사 지분 모두를 기후변화 대처를 위한 비영리재단에 넘겼다. 그 규모가 30억 달러(4조원)에 달한다.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 창업자 이본 취나드의 이야기다.

산을 사랑한 그는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1963년부터 2년간 주한미군으로 복무하면서 북한산 인수봉을 등반해 ‘취나드 A·B길’을 개척했다. 또 서울 중구 쌍림동 대장간에서 자신이 쓸 등산 장비를 직접 제작했는데, 그 장비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그래서 파타고니아라는 회사를 세웠고 그게 세계적인 업체가 됐다. 취나드는 지구를 살리기 위해 사업을 한다. 그의 회사 앞에는 ‘죽어버린 지구에서 할 수 있는 비즈니스란 없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최고의 제품을 만들되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게 사명이다. 페트병을 재활용한 제품을 개발하고 수선을 권장하는 식이다. 급기야 ‘이 재킷을 사지 마시오’라는 도발적인 광고를 내고 MZ세대의 지지를 얻었다.

실리콘밸리의 신발 업체인 ‘올버즈’도 기특한 기업이다. 창립자 팀 브라운은 프로축구 선수였던 경험을 살려 신발 제작을 꿈꿨다. 고국 뉴질랜드의 메리노 양털로 신발을 만들면 가볍고 따뜻하고 편할 것이라 여겼는데 시작은 쉽지 않았다. 2015년 회사를 세우고 18개월 동안 이탈리아에서 신발 개발에 몰두했지만 실패했다. 양털로 섬유는 만들었지만, 그 섬유로 신발을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올버즈를 구한 건 ‘제조업 짱’의 나라 한국의 신발 기업이었다. 부산에 있는 노바인터내쇼널이 올버즈의 의뢰를 받고 4개월 만에 양털 신발을 만들어냈다. 올버즈는 나아가 나무 펄프를 이용한 여름용 러닝화를 내놓고 사탕수수 찌꺼기로 바닥 고무를 개발했다. 또 동물 복지를 중시하고 제작 과정에서 에너지 소비를 극단적으로 낮췄다. 친환경 기업으로 유명해지자 버락 오바마, 래리 페이지, 오프라 윈프리 같은 잘 나가는 사람들이 올버즈 신발을 신고 자랑했다. 그렇게 돈도 잘 벌고 존경도 받는 회사가 됐다.

파타고니아와 올버즈는 글로벌 기업평가의 표준으로 뜬 비콥(B-corp) 인증을 받은 기업들이다. 비콥이란 주주뿐만 아니라 환경과 직원, 고객, 지역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기업(Benefit Corporations)의 줄임말이다. 2006년 미국에서 설립된 비영리단체인 비랩(B-Lab)이 주관한다. 현재 89개국 6400여개 기업이 인증을 받았다. 한국은 이제 겨우 20여곳이라고 하니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얼마 전 시작된 현대자동차의 생산직 채용 소식에 온 나라가 들썩였다. 채용 홈페이지는 첫날부터 밀려드는 지원자로 마비됐다. 10년 만의 채용이었다고는 하지만 400명 뽑는데 10만명이나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국민 오디션’이라 불릴 만하다. 인터넷에선 연봉 1억원에 정년 보장, 현대차 30% 할인이 회자됐고 공무원의 처우와 비교하는 글이 이어졌다. ‘꿈의 직장’이니 ‘로또 직장’ ‘킹산직(킹+생산직)’ 등의 신조어가 이어졌다.

그런데 이는 월급과 평생직장보다는 워라밸과 자기계발을 꿈꾸는 미국의 세태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어서 의아할 정도다. 딜로이트의 2019년 MZ세대 보고서를 보면 미국 청년들은 ‘어떻게 하면 많이 벌까’가 아닌 ‘어떻게 하면 최소 비용으로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대신 기업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돈 많이 주고 편한 회사’처럼 비콥 인증을 받은 ‘착한 회사’에 취업자들이 열광하는 날이 어서 오면 좋겠다.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kitt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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