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수술하고 아륀지하는 나라… “영어는 한국서 종교” [이슈&탐사]

[욕망의 출발선, 영어유치원] <4> 영어가 종교인 나라


고액의 유아대상 영어학원(영어유치원)을 중심으로 확대되는 조기 영어교육의 이면에는 한국사회 특유의 영어 보상 체계가 있다. 영어 성적으로만 대학에 갈 수 있는 입시제도가 존재하는가 하면, 영어를 크게 활용하지 않는 기업도 직원을 채용할 때 ‘공인 영어시험’ 점수를 요구한다. 일상 생활에서도 영어를 잘못 말하면 국어를 잘못 말한 것보다 오히려 더 부끄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한 영어유치원 학부모는 “다른 과목은 몰라도 ‘영어를 못하는 엘리트’는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사립초-국제중-특목고·자사고의 ‘엘리트 코스’ 맨 앞에 영어유치원이 놓인 것은 결국 한국사회에서 영어가 누려온 상징적 지위, 영어에 대한 확고한 사회적 보상을 파악한 부모들의 선택이다. 한국인은 영어유치원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영어에 조바심을 냈다. 발음이 나쁘면 미국에서 오렌지 하나 사먹지 못한다고 걱정했고, 자녀를 위해 부모 중 한쪽이 남아 유학비를 송금하는 가정은 여전히 많다. ‘r’과 ‘l’ 발음을 좋게 만들겠다며 성형외과에서 자녀의 혀를 수술시키던 서울의 모습이 외신을 타고 세계에 전달된 사례도 있다.

“영어, 이 나라의 종교다”

지금은 영어유치원을 준비하는 만 3세가 “지난 토요일에 키즈카페에 갔었다”고 영어로 말하는 세상이지만, 27년 전까지는 중학교에서 알파벳을 가르쳤다.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전면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세계화’를 강조한 김영삼정부 당시인 1997년 3월이다. 당시 시기상조론도 일었지만 교육부는 “세계화의 도도한 물결”이라고 했다. 안병영 당시 교육부 장관은 “역사에 책임을 진다는 자세로 초등 영어교육을 정착시키겠다”고 했었다.

영어 따위 배울 필요 없다고 말하는 이는 없었다. 문제는 정부가 영어 공교육을 강화할수록 사교육 시장이 팽창했다는 점이다. 안 전 장관은 97년 3월 국회에서 영어 사교육 확대 문제를 지적받곤 “영어를 못해서 고생한 부모 세대의 좌절과 한, 또 이에 따른 조기 영어교육에 대한 엄청난 집착이 작용했다”고 했다. 정부는 공교육의 ‘흡수 효과’를 기대했지만 학교의 영어 교육이 낡았다는 인식, ‘원어민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인식은 커지기만 했다.

2002년 LA타임스는 한국의 영어 조기교육 광풍을 ‘한국인의 혀 수술’이라는 기사로 전했다. 서울에서 5세 미만 유아들의 혓바닥 아래쪽을 절개하는 수술이 확산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사는 “한국인들은 아이들에게 이 수술을 시키면 ‘쌀(rice)’을 ‘이(lice)’처럼 발음하지 않게 될 것이라 믿고 있다”고 쓰여 있다. 실제 수술을 하던 의사는 “부모들이 간절하게 수술을 원한다”고, EBS에 출연하던 한 외국인은 “영어 공부는 이 나라의 종교”라고 인터뷰를 했다. 지금 유아들은 영어 발음 때문에 혀를 찢지 않는다. 다만 읽을 게 많다 보니 눈이 나빠져 ‘드림렌즈’를 끼고 잠든다고 한다.

90년대 중반 하나둘 생긴 영어유치원은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유행했다. 해외에서 살다 오지 못하면 혀라도 늘리자는 분위기 속에서, 언어 습득력이 높은 시기를 공략하는 영어유치원은 매력적인 대안이었다. 한학성 전 경희대 응용영어통번역학과 교수는 “당시에는 부유층이 입시 영어에서 자녀를 다른 사람보다 한발 앞서가게 하기 위해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이 시기 영어유치원을 다닌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높은 확률로 특목고·자사고를 졸업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국민일보 3월 6일자 1면 참조).


영어는 과열돼 있는 한국의 사교육 시장 속에서도 남다르게 대접받는 과목이었다. 학교 수업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엘리트의 덕목이나 교양처럼 취급받았다. 변수용 미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육학·인구학·아시아학 교수는 “영어유치원이 아니더라도 많은 한국의 학부모들은 취학 전 교육에 대해 막대한 비용을 지불한다”며 “영어유치원이 다른 사교육과 차별화 되는 것은 ‘영어’라는 언어가 한국사회에서 갖는 상징적인 의미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영어유치원 학부모들은 단순히 ‘수능 영어’를 잘 하게 만들려고 자녀를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기업은 영어를 채용의 중요한 관문으로 내세웠고, 어학원은 새벽에 직장인 강좌를 개설했다. 1982년 처음으로 치러진 토익(TOEIC) 시험 응시 인원은 점점 늘어 2003년 169만명을 기록했다. 시험을 처음 고안한 일본(143만명)을 따돌리고 세계에서 응시자가 가장 많았다. 토익위원회가 2013년 마지막으로 공개한 연 응시인원은 207만명이다.

2008년 이명박정부가 영어수업 시수 확대, 영어전용교재 도입, 영어전용교실 설치 등을 추진한 때에는 정책 실효성 논란만큼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의 발언이 화제가 됐었다. 그는 “미국에선 ‘오렌지(Orange)’라고 하면 못 알아듣고 ‘어륀지’ 해야 알아듣는다”며 “영어 표기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여론은 현장 실정을 모르는 정책 판단보다 우월한 영어 발음을 논하는 태도를 더 크게 비난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녀의 해외 유학을 위해 생이별을 감내하는 ‘기러기 부부’가 늘고 있었다.

영어를 공용어로 만들자?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작은지를 깨달을 때마다 영어의 지위는 높아졌다. 최초의 영어 교육이 시작된 것은 우리가 미국과의 관계를 연 조미수호통상조약(1882년) 이듬해였다. 당시 통역관 양성 관립학교 ‘동문학(同文學)’이 문을 열었는데, 이것이 최초의 영어 교육기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후 한국인의 유창한 영어는 ‘외국인의 칭찬’ 대상이 된다. 독립신문은 1897년 배재학당 졸업생 대표의 연설을 전했다. “이승만이가 영어로 조선 독립 문제를 연설을 하는데, 뜻이 훌륭하고 영어도 알아듣게 하여 외국 사람들이 매우 칭찬들 하더라”는 기사였다. 지금도 한국인은 누군가가 해외에서 연설을 하면 그 영어가 유창했는지 아닌지를 따진다.

전쟁을 겪고 미국의 도움이 절실했던 시기를 지나 1988년 서울올림픽을 거치기까지 “영어를 배워야 산다”는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 직후인 1998년에는 아예 ‘영어 공용화론’이 일었다. 소설가 복거일이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에서 “민족어에 대한 애착과 세계어를 받아들여야 할 경제적 논리가 우리의 선택을 어렵게 한다”며 논쟁에 불을 지폈었다.

당시 많은 비난을 받았던 복 작가는 현재도 “‘세계 시민’으로서 영어를 공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복 작가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새로운 세기를 맞아 ‘이게 제일 급하다’고 주장한 것이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그게 왜 욕을 먹느냐’고 한다”고 말했다. 복 작가는 “BTS 등 우리나라 가수들의 가사를 보면 영어가 섞여 있다. 세상이 바뀌자 내가 주장해온 것이 상식이 된 듯하다”고 말했다.

본업과 별개의 영어 실력만으로 누군가를 회자하는 일도 계속된다. 서울 강남의 영어유치원 학부모들이 “내 자녀가 이 정도 영어를 하면 좋겠다”며 자주 거론한 한 사람이 있다. 2020년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 때 봉준호 감독을 탁월하게 통역한 최성재(샤론 최)씨다. 학부모들은 그가 ‘빅3’로 꼽히는 유명 초등 영어학원을 다녔으며, 통역 이후 그 어학원에 문의전화가 쇄도했다고 입을 모았다. 학부모들은 최씨를 자꾸 ‘통역사’라거나 ‘대치 키즈’라고 칭했다. 그가 영화학도임을 아는 이는 드물었다.

이슈&탐사팀 이택현 박장군 정진영 이경원 기자 alle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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